00 마을회관,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2000년대 최고의 놀이문화였던 스타크래프트입니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아니 김 씨, 지금 일꾼 좀 더 뽑아"
"어허, 지금 진출(공격을 하러 나가는 것)을 하면 쓰나"
"에헤이, 미니맵도 안 보고 스타를 해? 어디 가서 우리 마을 사람이라고 하지마소!"
"하, 거참 왜 그렇게 훈수질들이여?"
"벌처는 그렇게 쓰는 게 아녀!"
나이가 무색함이 느껴질 만큼, 현란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돋보기안경과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바라보는 눈빛과 열정은 그 시절의 젊은이들 못지않습니다.
* '6시 내 고향'이나 '블리자드'(스타크래프트 개발사)로 부터 광고, 지원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볼 수 없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어르신들이 모이는 공원이나 마을회관에 가면 장기나 바둑을 두고 계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옆에서 훈수 두시는 분들까지 갖춰지면 완벽한 하나의 장면이 완성된다. 처음 보는 어르신들이라도 장기판과 바둑판만 있다면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스타크래프트가 그랬다. 우리 어린 시절 최고의 놀이문화.스타크래프트
지금은 롤이나 오버워치, 피파온라인과 같은 다양한 게임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게임이 많지 않았다. 인터넷의 보급과 개인 피시 보급률이 크게 늘어나며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의 중심에서 온라인 게임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중 최고의 인기 게임이자 게임문화를 선도한 것은 바로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는 그 시절의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게임이었다.피시방을 가면 스타크래프트 고수의 뒤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했으며, 심지어 게임은 하지 않고 고수의 게임을 보려고 피시방에 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르신들이 즐기는 장기, 바둑과 스타크래프트는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이 있다. 아래의 공통점을 읽다 보면 장기와 바둑을 잇는 민속놀이로 스타크래프트를 뽑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둑과 장기, 스타크래프트의 공통점
1. 잘하는 사람은 적고 훈수꾼이 많다.
놀이를 공부처럼 하는 사람은 잘 없기에 다들 실력이 비슷하기 마련이다.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하기에 훈수 두는 맛도 있는 것이 아닐까. 잘하는 사람이 게임을 하면 다들 감탄만 하고 한마디도 안 거든다.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보기 바쁘기 때문에.
2. 형세가 기울어질 때쯤 여지없이 변명부터 나온다.
게임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오늘 바이오리듬이 안 좋다니, 운세가 안 좋다니, 원래 이런 실력이 아닌데, 점심 먹은 게 내려가지 않는다 등 별의별 변명이 다 등장하기 시작한다. 게임이 언제 끝나냐 궁금하다고? 변명이 시작되면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이다. 한쪽만 인정하지 않을 뿐 모두가 알고 있다.
3. 그래도 마지막에 수고했습니다, gg(good game)으로 끝난다.
정말 신사답지 않습니까? 물론 바둑판, 장기판을 뒤엎는다거나(?), 욕설과 함께 디스(게임을 방해하는 행위)를 거는 경우도 있다. 누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 거 같은데? 동방예의지국의 시민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전통을 이어가야 할 텐데.
4. 선(先)을 누가 잡냐, 종족이 무엇이냐 시작할 때부터 다툰다.
실제로 이러한 부분들이 게임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승부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쉬이 양보하지 않는다. 특히 비슷한 실력을 가진 친구들은 게임이 끝나도 승복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서로의 실력을 내려 까기 바쁘기에 절대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이 또한 하나의 볼거리가 아닐까?
5. 고수는 말이 없다.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들이 다투는 것만 바라봐도 즐겁다. 고수의 눈에는 다 똑같다.
6. 분하면 이길 때까지 재대결을 요청한다.
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면 너무 분하다. 그러면 내가 이길 때까지 재대결을 신청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이런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한다. "ㄹ?"라고 상대방이 말하면 '내가 너 정도는 어떻게 해볼 만하니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라는 뜻이다. 다음 판도 기필코 이기자. 아니면 자리를 떠서 상대방을 더욱 분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어이 김 씨 그냥 가면 어떡해..."라는 말을 뒤로하고 멋지게 퇴장하자.
7.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게임을 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지만 사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게임에 참여한다. 함께 즐기고 웃을 수 있기에 진정한 민속놀이라 할 만하다.
어린 시절의 놀이문화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놀이문화는 동네마다, 지역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모이더라도 데덴찌, 잰디, 묵찌, 위아래 등의 편 가르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스톱, 마피아 게임, 왕게임 등을 손쉽게 할 수 있지 않은가? 90년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스타크래프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스타크래프트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모두가 바쁘기에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고, 어른이 되면서 전국 각지로 흩어져버렸고, 더군다나 코로나 사태로 얼굴 보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운 시기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있기에 마음 편히 게임을 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마음 한편에 모두가 조그마한 걱정을 안고 살고 있기에, 모두가 등에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있기에, 마음 편히 즐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취업난, 주택난이라는 높은 사회의 벽을 오르는 지금의 20대가 언젠가는 어깨의 짐을 털어버리고 삶에 여유와 웃음을 되찾길 바란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모든 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의 놀이를 즐기며 추억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그저 웃고 떠들 수 있었던 추억의 시절이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