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치킨이 먹고 싶어 졌습니다. 오랜만에 배달어플을 열었는데 치킨 가격을 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무슨 치킨이 이렇게 비싸?' 20,000원에 육박하는 치킨값은 제 식비로는 엄두가 안나는 가격입니다. 고민을 했죠. '이번 달 식비가 얼마나 남았지...?' 한숨 푹 내쉬려는 찰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마리 치킨을 시키면 한 두 끼, 세 끼 정도는 해결되지 않을까? 다른 거 시켜먹는 것보다는 가격 면에서 나을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시켜!' 그렇게 충동적으로 치킨을 주문하였고 치킨의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에 '그래, 이게 행복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그렇게 3일 내내 치킨을 먹게 되었습니다.
저는 음식 양이 남자치고는 상당히 작은 편입니다. 자장면 하나를 다 먹기가 부담스럽고, 국밥 한 그릇이면 배가 터질 것 같습니다. 치킨은 반마리도 혼자 다 먹지 못하죠. 그런데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 치킨을 한 두 번, 세 번이면 다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첫날 저녁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반마리 정도 후딱 해치웠을까요? 남은 치킨을 좁은 고시원 냉장고에 넣으려니 아주 꽉꽉 들어차더군요. 치킨으로 가득 찬 제 배처럼 말이죠.
다음날 아침, 치킨 몇 덩어리를 데워 밥이랑 함께 먹었습니다. 이름하여 치밥(치킨+밥). 이때까지만 해도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고시원 밥과 김치에 간단한 반찬 하나 함께 곁들여 먹다가 윤기가 잘잘잘 흐르는 닭튀김이라니. 제 식단이 꽤나 신분 상승을 했지만, 배통이 작은 저에게는 치킨을 처리하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점심때 치킨 몇 덩어리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는데 살짝 후회가 찾아왔습니다. '다 먹지도 못할걸 알면서 왜 시켰니...? 혈관에 지방이 흐르는 게 느껴지는데?(?)' 어제의 행복했던 저는 어디 가고, 치킨을 먹어치워야 할 짐이라고 느껴는 제가 있더군요. 버리긴 음식이 아깝고 먹자 하니 물리고. 가만히 놔두자니 상할 것 같고.
제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옛날이야기가 하나 떠오르더군요. 삼국지를 보면 조조가 유비와 한중이라는 지역을 두고 전투를 벌였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중은 유비가 지배하는 촉나라로 가는 골목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런데 조조의 입장에선 한중이라는 땅이 참 애매한 곳이었습니다. 뺐자고 하니 지키기도 힘들 것 같고, 놔두자니 훗날에 우환이 될 것 같은. 그날 저녁, 저녁밥으로 나온 닭갈비를 뜯으면서 조조는 한중을 계륵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도 흔히 사용하는 '계륵'이라는 고사성어가 바로 이 이야기에 나왔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으려니 성가신 그런 부위. 저에겐 두 마리 치킨이 그랬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물려서 다신 보기 싫은.
사람의 마음이란 참 재미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바람 한 점에 이리 휘둘렸다가 다시 저쪽으로 휘둘렸다가. 장윤정 씨의 노래 '어머나'에는'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주 철학적으로 잘 표현한 가사가 아닌가 싶네요. 우리는 어떤 행동과 상황에 대해 단일 감정을 가지기도 하지만 양가감정을 느끼기도 하죠. 대부분의 행동과 말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되도록이면 좋은 점이 많은 행동은 습관으로 남기려고 노력하고, 나쁜 점이 많은 행동은 미래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일기에 기록하여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갈대 같은 제 마음이 지나가는 모든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철학자 니체가 했던 말입니다. 제가 다음에도 두 마리 치킨을 시켜 3일 동안 끙끙대며 해치울지도 모릅니다. 우린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함에, 이를 제동 시켜줄 브레이크가 하나 필요하겠죠. 소비를 하기 전에 '이것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지, 과하거나 모자라지는 않는지' 고민해보는 습관을 들이고, 나의 부족했던 점은 항상 일기에 기록하는 습관을 통해 언젠가 고민에 빠질 미래의 저에게 저만의 해답서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치킨 하나로 참 많은 생각을 했네요. 생각이 많아도 탈입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다음에 또 치킨을 끙끙대며 먹고 있을지도 모르죠. '내가 이전에도 이런 고민을 했던가...?' 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