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구경하지 않을래요?

타의적 미니멀리스트

by RNJ


고시원 구경하지 않을래요?



27살, 생에 처음 고시원이라는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유튜브나 티브이에서 보던 고시원보다는 다소 좋아 보였던(기대가 너무 낮았던 것 같습니다) 나의 방. 오늘은 내가 사는 곳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공간이 좁다 보니 사진에 담기 어려워 직접 손으로 그려보았는데... 다 그리고 사진을 업로드하고 보니 꼭 교도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대권 작가님이 쓰신 '야생초 편지'에 작가님이 생활하던 감방을 그린 그림을 넣으셨던데... 왠지 그 느낌이 나서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아무튼 제가 사는 방은 딱 저렇습니다. 사각형의 네모반듯한 공간에 나의 모든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화장실과 식탁 겸 책상, 냉장고, 조그마한 티브이 수납장과 침대와 옷장. 이것이 나의 전부입니다. 나는 내 방을 타의적 미니멀리스트의 방이라고 부릅니다. 왜냐고요? 새로운 물건을 추가하기엔 공간이 너무 좁거든요.


출입문에서 4 발자국 걸으면 침대에 도착하고, 책상에서 화장실은 한 발자국. 이것이 내가 이동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청소는 3분이면 끝낼 수 있으며(절대 대충 하는 게 아닙니다!) 책상에 앉아있으면 왼쪽이 수납공간, 오른쪽 아래가 냉장고라 전혀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입니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 좁은 공간 안에 닥지닥지 잘 붙어있습니다. 문제는 내 몸도 이곳에 달라붙어있다는 점. 그래도 이 정도면 고시원치곤 꽤 넓은, 호화스러운(?) 방입니다. 창문도 제법 크고.


정확히 몇 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먹고, 씻고, 자고, 공부하고, 글도 쓰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으며 가끔 벽에 기대어 명상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공간의 제약으로, 고시원의 특수한 환경으로 하지 못하는 일도 참 많습니다. 손님이나 애인을 초대하거나,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TV 볼륨을 10 이상으로 높이는 어쩌면 '집'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곰팡이가 자라는 벽지에서 도망칠 수도, 새벽 2시에 티브이를 크게 트는 옆방 사람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고시원 입주 이후로 저는 하루에 한 번은 꼭 전망이 탁 트인 공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굽이 굽이 흘러가는 하천, 돈을 쓰지 않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톨스토이 단편선 中


톨스토이 단편선에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인공 바흠은 자신의 땅을 넓히고 싶은 농부이다. 땅을 넓히고 싶다는 욕망을 알아챈 악마는 바흠의 욕망을 자극할 함정을 파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땅이 한 뼘도 없던 바흠은 부지런히 일하고 돈을 모아 자신의 땅을 늘려가지만,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의 욕심 또한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상인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비옥한 땅을 많이 가진 부족이 있는데, 그들의 마음에만 든다면 엄청나게 큰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시키르라는 곳에 도착한 바흠은 그들의 독특한 측량법을 듣게 된다. 바로 해가 뜰 때 출발점을 떠나 해가 지기 전까지 둘러온 모든 땅이 그의 땅이 된다는 것. 바흠은 걸을수록 마음에 드는 땅이 많이 나오자 너무 멀리 걸어버렸고, 심장이 터져라 시작점으로 돌아오던 도중 입에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그를 따라온 하인은 바흠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길이를 잰 후 그를 거기에 묻어 주었다.

그 땅이 바흠이 차지한 땅의 전부였다.

- 톨스토이 단편선 中


우리에겐 우리만의 공간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한동안 공유경제라는 키워드가 우리 생활에 핵심 키워드로 다가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버라던지, 공유 주방, 셰어하우스가 대표적인 공유경제가 일으킨 변화였죠.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유경제라는 키워드는 힘을 잃어 우리의 기억에서 잊힌 듯 하지만 이전까지 우리 삶에 꽤나 많은 영향을 미친 아이디어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점점 개인적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거리두기'가 점점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거리두기로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고시원은 꽤 많은 시설을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주방과 화장실, 샤워실, 휴게실 등등. 사람들은 필수 생활시설의 공유 비중을 줄이고,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삶을 성공의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공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곤 하죠. 즉, 공유하는 필수 생활시설이 적어질수록 부의 피라미드 정상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반대로 부를 축적할수록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가시설이 공유자산으로 늘어납니다. 요즘 신축하고 있는 아파트는 복합 관광단지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편의 시설을 제공합니다. 거주민들을 위한 수영장, 도서관, 헬스장, 영화관, 레스토랑과 카페. 세상은 가난할수록 필수시설을 공유하고 부유해질수록 여가시설을 공유합니다. 사라질 것만 같았던 공유경제는 부의 독점적 공유경제로 부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톨스토이의 작품은 시대에 무관한, 인간이 삶아감에 있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가끔 저는 고시원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다.' '방이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어.' 넓은 집, 수도권에 위치한 비싼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가끔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난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만약 아니라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매일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자살하는, 난민국 아이들과 비슷한 행복지수를 경험하고 있다는 대한민국 아이들. 우리는 진정 우리의,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땅은 바흠이 그랬던 것처럼, 한 뼘의 땅과 유골함 한 칸이 전부일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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