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시인, 라디오에 출연하다

by RNJ

골방 시인, 라디오에 출연하다


라디오를 마지막으로 들은 지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버스와 택시 안에서 스치듯이 라디오를 들은 것을 제외하고, 라디오를 듣기 위해서 직접 주파수를 맞췄던 기억은 꽤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로 고등학교 야자 시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되는 야간 자율(=강제) 학습,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가끔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진행자도, 게스트도 누군지 몰랐지만 토크 사이사이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곤 했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라디오를 챙겨 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영어 듣기 평가를 할 때, 전국의 모든 동급생들과 함께 라디오를 듣곤 했네요. 듣기 평가가 시작하기 전, 선생님들이 보낸 응원 메시지를 읽어주던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기억이 납니다. 라디오를 챙겨 듣던 학창 시절, 거의 10년이 넘게 흐른 뒤 저는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시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21년 6월 저의 첫 공저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이전과 달리 서점에서 제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더군요. 여태까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서점을 방문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었네요.


책 출판을 계기로 '경인방송' 라디오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고시원 골방에서 내내 글만 쓰다가 오래간만에 서울 바람을 좀 쐴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또 언제 라디오에 출연해보겠습니까!


서점에 제가 참여한 시집이 출간되있다는 사실은 꽤나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작가님으로부터 안내를 받고, 대본을 받아 미리 답변을 준비했습니다.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인데도 엄청 떨리더군요. 생방송을 진행하는 DJ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아주 조금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송 녹화 날,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지하철을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저녁 6시 즈음 2호선을 타러 가는 실수(?)를 범했는데요, 아 지옥철. 샌드위치가 돼서 합정까지 실려갔습니다.


합정에서 녹음을 진행하였고 진행자님과 작가님, 그리고 함께 녹음에 참여해주신 작가님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녹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인사를 할 때는 엄청 떨리더니, 끝나갈 때쯤 되니 많이 아쉽더군요.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리고 대망의 방송날,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출연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라디오 대본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이 질문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이유가 뭐지?' 어딜 가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단골 질문 중에 하나죠. '~을 한 이유가 뭐예요?' '~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한 이유나 계기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유나 계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 어떤 행동이건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있다고 하더군요(이런 행동을 이성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 같네요. 어쩌면 이유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을 통해 어떤 감정을 새로 느꼈고, 어떤 변화를 체험했는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시를 쓰고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고요? 삶이 즐거워졌습니다. 이것만은 확실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시를 쓰기 전까지는 이런 변화와 즐거움을 전혀 모르고 살았죠. 이유와 계기는 행동하고 경험한 이후에야 알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찻길 인생


우리의 삶에도 이유가 있을까요? 인생은 꼭 정해진 궤도를 따라 달리는 운명적인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철로를 따라 안정적인 여행을 하며 익숙한 풍경을 보는 것 또한 재미이지만, 가끔 새로운 풍경과 기대 없이 만난 장관에 심장이 힘차게 뛰기도 하죠.


이 여행의 끝이 어디일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인생도 끝에 다 닿고 나서야 우리 삶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유 없이 태어났고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야겠습니다.


나는 재미있고 잊지 못할 여행을 마쳤는지, 다소 따분하고 열정 없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는지. 철로를 이탈한 제 인생은 오늘도 이리저리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저만의 답을 만드는 과정이라 믿어야겠죠? 저는 오늘도 제 삶의 이유가 될 소중한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은 가렸습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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