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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 위의 새끼오리
안데르센 동화 '미운 아기 오리' 재창작
by
RNJ
Aug 2. 2021
종탑 위의 새끼오리
뒤뚱뒤뚱 올라가는
오리의 행렬
정상을 향한 걸음
우리는 날지 않지
튼튼한 다리가 있는걸!
날갯짓은 피곤한 일이라고 배웠어
암, 그렇고말고
혹시 오리 새끼들이 날면 어떡하지?
아 두려워라!
날지 못하게 막아야지
날갯죽지를 꺾어서라도!
우리는 종탑을 걸어 올라야지
종탑 위엔 뭐가 있나요?
아름다운 종소리가 있지!
저 구름에 숨어있는
땡그랑 땡그랑
오리들이 힘차게 오른다
보이지 않는,
누구도 본 적 없는
구름 속 영광의 종소리를 향해!
조금, 늦게 태어나
괄시받고 멸시받던
미운 ‘우리’ 새끼
나는 오르기 싫어, 종탑에 오르기 싫어
나는 하늘을 날고 싶다고!
웃음이 터진 오리, 닭, 칠면조 등등...
날 선 군소리 한마디
늦게 태어났으면
더 부지런히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네 형제와 누이들을 보렴
벌써 다음 층에 올라갔지 뭐야!
음흉한 기러기 부부
언제까지 줄을 기다릴까!
탑 구석 지저분히 쌓인
깃털을 엮어 밧줄을 만들어
벽을 타고 종탑을 오르다
저 탑 아래로 영영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 불쌍한 기러기들!
튼튼한 다리를 쓰지 않다니!
저 아래에는 고양이가 살 텐데요
아무도 고양이를 본 적은 없지만요
저 멀리,
해가 지는 저 산맥 너머로
무리 지어 날아가는
아, 저것이 우리의 삶인데
아, 저것이 나의 삶인데!
날개를 힘껏 펼쳐
아, 새끼오리는 몸을 던졌습니다
저 멀리멀리...
휘청휘청 날아갑니다
언젠간 두 발이 땅에 닿겠죠?
그래도 다시 날아오를 겁니다!
저 먼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아, 백조의 비상(飛上)입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종탑엔
꽥꽥대는 오리들의 울음소리만
그 아무도 정상을 보지 못한 채
다리만 열심히 굴립니다
이 탑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요?
우리의 날개는 왜 달려 있는 거지?
어이, 줄이 밀리잖아 빨리빨리 걸어
땡그랑 땡그랑
속이 텅 빈 종이 요란하게 울려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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