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한두 달 정도 살았을 때 극심한 우울감을 경험했었다. 소음과 악취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나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며칠을 침대에서 누워만 지내다가 검색창에 '우울증', '정신과 잘하는 곳', '심리 상담'을 검색했고 병원 연락처를 키패드에 찍은 채 수십 번 고민했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고 예상을 뛰어넘는 상담비를 안내받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병원을 갈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스스로 치료해야겠다! 언제나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편이 좋지만 나는 나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 것만 같았다. 적응보단 체념이 빠르게 다가오는 이 공간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시도 끝에 몇 가지 습관이 생겼는데(ex : 불 끄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기, 우울해지면 곧장 공원으로 도망치기 등) 이 중 가장 좋은 습관은 바로 차를 즐기기 시작한 것과 산책이 아닐까 싶다. 고시원은 환기가 잘 되지 않고 공용 주방은 끊임없이 무언갈 뱉어내기에 맞서 싸울 새로운 향과 퇴로 필요했다. 따듯한 차 한 잔이면 작은 방을 따듯한 향과 온기로 가득 채울 수 있었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정표에 차 마시기를 추가해야만 했다.
차 한 잔으로는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상황을 마주하면(ex : 끝이 보이지 않는 입주민 간의 다툼과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음식이 조리되는 주방) 노트북과 책 한 권을 들고 넓고 시원하고 쾌적한 공원이나 카페로 도망쳤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풀내음이 커피 향으로 가득한 곳에서 손에 잡히지 않던 일을 하나씩 정리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텀블러에 얼음과 티백 하나를 담아서 탄천 산책로를 찾아갔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고시원에서 마주쳤던 익숙한 얼굴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우리는 어색한 미소와 마그네슘 부족이 의심되는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극단적으로 압축된 공간에 살다 보니 전망 좋은 공원과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카페를 의식적으로 찾아다니게 되었다. 고시원처럼 좁은 공간이 집중력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이웃들의 소음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냄새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이러다 살짝 미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시원한 다리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하천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물고기와 이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왜가리의 눈치싸움을 구경했다. 돈도 안 들고 공기도 좋고 사람들의 표정도 즐거워 보였다.
아이러니했지만 우울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보금자리에서 멀어져야 했다. 딱딱한 접이식 의자에서 벗어나 푹신한 잔디밭을 찾아 누워야 했고(산책 나온 강아지가 얼굴을 핥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카페 구석에서 쓰리샷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홀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때론 고시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나름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조금 투박한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시 우울감이 찾아왔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원과 도서관에서 보냈다. 비용 없이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다음에 돈을 벌면 세금을 열심히 내야겠다는 나이브한 생각도 잠시 했었다(지금 입장은 노코멘트가 맞겠지만).
고시원에서 보낸 마지막 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텀블러에 따듯한 차를 담고 오랜 시간 탄천을 걸었다. 힘차게 흐르는 하천을 보며 얼마나 많은 고민거리를 털어냈던지. 갈 곳 없는 나를 품어준 정든 공간을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었다. 그런데 얼마 전 자주 산책을 다녔던 산책로와 다리를 우연히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재회에 반가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다리는 무너졌고 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 결함을 알고도 방치한 결과라는 보도가 이어서 쏟아졌다. 찬장에서 선물로 받은 녹차 세트에서 티백을 하나 꺼내 한잔 진하게 우려냈다. 그리고 베란다 테이블에 찻잔을 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내가 사랑했던 장소가 어떤 이들의 상실과 슬픔의 장소가 되었다. 바다 건너에서 달리 아쉬움을 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