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이야기

작은 방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

by RNJ
작은 방 이야기


내 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독방이 떠올랐다. 네모난 방 안에 변기와 식탁과 침대가 공존하는 곳이 고시원과 감옥 말고 또 있을까?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작가가 개구리를 키웠던 감방이 떠오르기도 하고, 밤이 되면 영화 <일급 살인>에서 케빈 베이컨이 갇혀있던 지하 감옥이 생각났다. 문에서 네 발자국만 걸으면 침대에 도착하고 책상에서 화장실은 반 발자국. 이것이 내가 방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전부였다.


3분 만에 대청소를 끝낼 수 있으며(절대 대충 하지 않았습니다!) 책상 왼쪽이 수납장, 오른쪽 아래에 미니 냉장고가 있어서 의자에 앉아서 모든 일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보다 편리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또 있을까? 나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이 팔 한번 뻗으면 닿을 거리 안에 벌집처럼 닥지닥지 잘 붙어있었다. 문제는 내 몸도 이곳에 철썩 달라붙어 있다는 것?


재산이 1조가 넘는 재벌가 집안의 정치인이 고시원에 방문해서 지은 표정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하나의 웃픈 밈으로 남아 온라인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아마 나의 표정도 재벌 정치인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중형 아파트의 작은 방보다 작은 집의 막막한 첫인상은 순간적으로 사람의 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친한 친구들에게 방사진을 보여주니 곧장 전화가 왔다. 통화 중간중간에 긴 침묵이 흘렀었다.


동병상련. 작은 방에서 살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TV에 쪽방촌, 고시촌이 나오면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고(가끔 눈물이 났다) 영화를 볼 땐 불량 주거 속에 살고 있는 대사 한마디 없는 배경 인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살아보고 나서야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체험과 목격이 없는 공감은 빈껍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때 처음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갱스 오브 뉴욕>, <김 씨 표류기>, <기생충>.... 외국인 이민자, 몰락한 청년층과 중산층의 거처는 언제나 지하, 아니면 골방이었다.


국가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소시민의 소외현상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물일까? 2018년 기준으로 영국의 보트피플은 1만 명에 육박하며 월 수입이 20만 원이 넘지 않는 6억 명의 중국인은 건물 지하실과 토굴에 살며 생쥐족이라고 멸칭으로 불리고 있다. 대한민국 또한 비(非) 주택 주거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서울에는 고립과 은둔을 선택한 청년이 1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2025년까지 노숙자 수를 25% 줄이겠다는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요즘은 영화와 드라마가 현실의 매운맛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경과 시대를 넘어서 확장되고 있는 빈곤과 주거 문제를 두고 ‘홈리스-팬데믹’이라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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