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이어진 인연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는 작가들

by RNJ


사진으로 이어진 인연


시집이 나오기 전, SNS 홍보와 서점 홍보 배너에 쓰일 프로필 사진을 한 장 찍어야 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더군요.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할 때 찍었던 사진을 정말 오랜만에 꺼내 보았습니다. 왁스와 스프레이로 바짝 세워 올린 머리, 각이 잡힌 정장과 넥타이, 어설픈 솜씨로 정리한 눈썹 라인까지. 분명히 나를 찍은 사진이었지만 내가 아닌듯한, 이질적인 존재가 괴상한(?)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번 사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찍어 보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옷, 머리끈으로 가볍게 묶은 머리. 작가 프로필 사진에선 온전한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사진작가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프로필 사진 가격과 절차에 대한 안내를 받고 조명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았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긴장이 풀어지지 않더군요. 작가님은 저의 한껏 굳은 표정을 풀어주시기 위해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작가님은 저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하셨고, 저는 제가 쓴 시와 시에 담긴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냈습니다. 말을 이어가는 사이사이 터지는 플래시, 이전보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들.


사진 촬영을 마무리하고 저는 작가님과 사진관 창가에 놓인 책상에 앉아 작가님께서 내주신 차를 마시며 글과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작가님은 시와 글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와 글을 사랑하는 사진작가의 우연한 만남. 작가님은 사진관 뒤편에 숨겨진 공간에서 아주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있는 시집을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얀 종이가 세월을 만나 노랗게 변한, 표지가 떨어질 것만 같은 정말 오래된 책이었습니다.


작가님은 본인이 좋아하는 시 한 편을 멋지게 읊으셨고, 오래된 시집을 앞 뒤로 넘기면서 시와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듬뿍 풀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시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시를 통해 이루고 싶은 제 작은 소망을 작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쓴 시를 만난 독자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시를 쓰고 싶다고. 언젠가 이 시를 처음 만난 시점을 회상할 때, 그곳에 시와 함께 자란 행복한 추억들이 만개한, 그런 동산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저는 이때 당시 고시원 골방에 박혀 하루 종일 시를 쓰고 고치는데 여념이 없던 시기라,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법 늦은 시간이 되었더군요. 작가님께서는 사진 몇 장을 서비스로 작업해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책을 선물하기로 했고요.




며칠 후 작가님이 정성스레 작업한 사진 파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아주, 아니 200% 마음에 들더군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표정. 자연스러움을 원했던 저를 위해 보정을 최소한으로 하여 멋진 완성품을 보내 주셨더군요. 저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시고 기대 이상의 작품을 보내주신 작가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작가님은 '프로'였습니다.


저는 책이 출판되자마자 작가님께 책을 택배로 보내드렸습니다. 며칠 후, 작가님께서는 책을 잘 받았다고 연락을 해주셨습니다. 아내분과 함께 시를 읽고 낭송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말, 저의 시가 마음에 들었고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교보문고에 등록된 프로필,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이 올라간 프로필을 캡처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작가님이 찍어주신 사진으로 독자님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작가이자 팬이 되었습니다.




작가, 창작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作家)라고 부릅니다. 미술, 음악, 글, 사진... 자신의 장기와 도구를 활용하여 순간을 기록하고, 새로운 시선을 찾아내는 사람들이죠. 저는 글로 세상을 그려냅니다. 시를 통해 제 감정과 영감을 비유와 상징으로 피어내 보입니다. 내가 가장 기민하게 느낄 수 있는 시선과 감정을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수십 가지의 표현을 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퇴고의 수레바퀴에 빠지곤 하죠.


사진작가는 사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외부 요소를 고려하고,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진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한 가정의 벽에, 입사 지원서의 사진란에, SNS 프로필에, 새하얀 갤러리 벽에 걸리게 됩니다. 사진의 주제가 되는 객체를 가장 세련되고, 멋들어지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작가님들의 배움과 고민에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글과 사진은 이런 점에서 참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의 시선 끝에 맺힌 순간의 세상을 표현하는 작업. 피상적 존재에 새로운 시선과 감성을 더하여 다면적 존재로 만드는 작업들. 글을 쓰는 작가의 손 끝, 사진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손가락은 자칫 작품을 망칠 수 있는 여리고 조급함 자신의 마음과 끝이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툼의 끝에서 맞이한 자신의 타이밍 속에서 태어난 작품을 통해, 작가는 다른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곤 하죠. 작가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물을 감상하는 이에게 감정과 생각의 환기를 만들어내는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예술, 창조와 시도만으로 충분한 예술도 있지만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일은 서로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세상에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축복받은 직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란스럽고 혐오가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가는, 주고받는 인정 속에 피어나는 풍요의 기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쓰는 작가와 사진을 찍는 작가와의 만남. 우리는 서로에게 잊지 못할 인생의 추억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작은 감동들이 모여 크고 정직한 울림을 가지는 세상, 저의 이런 소망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바람으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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