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장국의 도시

by RNJ
제주도, 해장국의 도시

내장국밥, 그리고 계란 노른자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제주 맛집'을 검색해보면 제주도에는 해장국집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보자면(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추측입니다) 제주도는 술과 관련된 홍보와 마케팅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땅콩 막걸리, 고수리 술, 감귤 막걸리, 한라산... 전통주와 찰떡궁합인 싱싱한 해산물과 향토음식. 밤은 길고 입은 심심한 여행객들이 매력적인 술 한상에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겠죠. 이에 제주도는 한때 전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술 출고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스레 아침 해장국 문화도 함께 발달할 수 있었겠죠. 국내 여행객의 증가와 도민들의 외식 횟수 증가도 해장국 집이 늘어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선지, 소고기, 소 내장을 활용한 해장국이 요즘 제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장 메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도는 본래 소보다는 돼지가 흔한 섬이었습니다. '제주 똥돼지'라고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주도는 집집마다 돼지를 길렀으며 잔칫날에는 꼭 돼지를 잡아 손님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돼지 국수와 돔베고기, 아강발과 같은 음식들이 이런 지역 문화의 특성이 반영된 음식들이죠. 제주 고사리가 듬뿍 들어간 고사리 육개장, 접짝뼈국, 각재기국, 멸칫국도 제주도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입니다.


선지, 콩나물, 파, 머리고기


얼큰한 고추기름과 마늘향

제주도 해장국의 특징 중 하나는 얼큰한 고추기름과 마늘 향입니다. 고추기름과 마늘이 듬뿍 들어간 해장국은 술로 고주망태가 된 우리 내장을 깨우는 안성맞춤 메뉴입니다. 해장국을 먹다 보면 옆 테이블에서 소주 뚜껑 돌리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습니다. 해장국이 언제든지 든든한 안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다음 일정이 빡빡하신 여행객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대부분의 해장국집에서 시원한 국물이 가득 담긴 무김치가 함께 나옵니다. 대체로 양파 대신 맵싸한 풋고추를 내어 주며, 제주 풋고추의 매운맛을 우습게 생각한 여행객들의 괴로운 기침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해장국 본연의 육수 맛을 즐기다가, 반 정도 먹은 후 함께 나온 간 마늘을 넣어 먹으면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해장국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제주 순대국밥, 당근 고명


시장 국밥, 메밀가루

몸국

민속 오일장이나 노포(老鋪)를 방문하면 저렴한 가격에 제주 순댓국과 몸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제주에 당근이 많이 나서 그런지 고명으로 당근을 올려주는 집이 종종 있어요. 제주 순대는 육지 순대에 비해서 돼지 향이 조금 강하게 느껴집니다. 진한 육향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이 점도 매력이라 느껴질 수 있겠네요. 5일장이 열리는 날짜를 미리 확인하시면 전통 시장 구경과 함께 맛있는 지역 음식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먹을 것이 풍족하여 푸짐하고 종류가 다양한 해장국을 맛볼 수 있지만, 제주 몸국처럼 제주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도 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고기는 적고 먹일 사람은 많은 상황에서 바다에 흔한 몸을 뜯어다가 양을 늘려 먹었다고 합니다. 몸국에는 보통 메밀가루가 들어가는데, 예전부터 제주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면 감자와 고구마에 메밀가루를 버무려 범벅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메밀가루를 듬뿍 넣어 포만감을 느껴야 했던 이곳의 역사가 지금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 '몸국'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귀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는 접짝뼈국에도 메밀가루가 듬뿍 들어갑니다.




세한도


추사체, 세한도로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면서 조밥과 막된장을 먹어야 했다고 합니다. 명문가 집안에서 자라며 산해진미를 즐기던 그에게 잡곡과 해초, 구황작물이 주재료였던 제주 식단은 매우 낯설고 거친 음식이었겠죠. 추사 김정희가 2021년 제주도로 유배를 왔다면 두 눈이 휘둥그래 졌을 겁니다.


'아니, 지천에 널린 것이 해장국 집이구나! 내 이곳, 제주에 흠뻑 취해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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