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신전 벽면에 새겨진 유명한 글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흔히 알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가, 제 동네를 찾아온 여행자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떠오르곤 합니다. 분명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지만 그들은 제가 들어본 적도 없는 핫플레이스를 어떻게 나보다 잘 아는 걸까요? '네 동네를 알라!' 우리는 일상의 발길이 머무는 익숙한 길, 그 너머의 길 속에 얼마나 자주 섞여 들고 있을까요.
출퇴근길. 등하굣길. 마트 가는 길... 우리는 일상 속에서 목적지로 '곧장' 나아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주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최단거리,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길을 따라 움직이죠. 도시에는 정말 많은 길, 골목이 있고 다채로운 개성이 태어나는 수없이 많은 매력적인 장소가 존재합니다. 다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상에서 그런 정보를 꼼꼼히 수집하여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늦은 주말 아침, 침대에 늘어져서 넷플릭스를 보는 게 최고죠.
종종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지인이 찾아오면... 뭐랄까요? 형편없는 가이드가 되지 못할 망정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습니다. '너는 여기 살면서 00도 모르냐?' 제가 가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는 장소(존재 여부조차 몰랐던)로 질질 끌려가곤 했습니다. 여행을 꽤 좋아한다고 자부하던 저였지만, 여행자와 비교해봤을 때 내가 우리 동네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모든 여행지는 누군가의 일상일 뿐이니깐요. 제가 지인의 동네를 방문하면 동일한 대화가 새로운 장소에서 이어졌습니다. '야! 너는 여기 산다는 놈이 말이야...'
지인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는, 아마 저와 같이 여행자에게 이끌려 찾아온 '진정한' 현지인들이 이곳저곳에 섞여 있었을 겁니다. 우리 동네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불러일으키는 신선함을 한 꺼풀 벗겨내 보면, '정겨움'과 '낯선'이라는 단어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말로는 규정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숨어있습니다. 일상이 되어버린 무심함, 이에 대한 성급하고 섣부른 부끄러움이 아니었을까요.
요새는 종종 '느린'길을 일부러 찾아 걷습니다. 배달을 시키는 대신 음식을 찾으러 식당을 찾아가며 새로운 길을 찾아 걸어봅니다. 제법 많은 길을 새롭게 걸었다 생각하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는 우리 동네의 낯선 길들이 아직도 많으며, 이 사실에 기분이 몹시 즐겁습니다. 오늘은 도시의 어떤 면을 만나게 될까요? 일상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