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NJ Apr 22. 2022

두발규제, 머리 수난사

규칙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

두발규제, 머리 수난사



 제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K 중학교는 'K절(temple)'이라는 악명 높은 별명이 있었습니다. 별명을 듣자마자 이유를 대강 짐작하신 분도 있겠죠? 바로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머리가 죄다 민둥산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학교 규정집에 '앞머리는 5cm, 옆머리는 ~게 하며 ~'와 같은 규정이 분명히 존재하였습니다만...


 2000년대 학생들에게 뜨거운 감자는 바로 '두발 자유화'였습니다. 이웃 학교에선 머리 규정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할 때, 저의 자랑스러운 모교는 'K절'이라는 명예와 정통성을 지키는 일에 아주 열정적이었습니다. 한창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은 머리를 1cm 라도 더 기르기 위해 애썼고, 반대편에선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머리를 신생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죠. 교문에서 이루어지는 두발 단속을 피하기 위해 6시 등산(학교가 산 중턱에 위치했었습니다)을 강행하는 친구, 담과 철장을 넘고 개구멍을 통해 등교하는 친구, 그리고 이를 잡으러 뛰어다니거나 적절한(?) 장소에 잠복하고 있는 선생님까지. 두발 단속 기간은 마치 사바나 초원을 보는 듯했습니다.


 교문에서 30초 거리에 위치한 이용원에는 K학교 학생들을 위한 전용 'K커트'가 존재했습니다. 충성고객(?)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1,000원)에 특급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이런 이유로 학교와 이용원은 아주 오랜 시간 공생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두발 단속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은 수업시간, 체육시간, 점심시간, 조회시간에 반강제, 아니 자발적으로 K커트를 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실 '커트'라 말하기도 조금 민망한 게 사장님이 가위질을 하는 시간은 10초 내외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시간이 이발기로 고속도로를 뚫고 지반을 평평하게 다지는 토목 작업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규정을 아무도 존중하지 않았으니 가장 억울한 피해자는 규정을 충실하게 지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미용실 아주머니들이 자를 동원해서 길이를 맞춘 머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빠꾸(=반려) 처분이 내려졌고 달머리를 만들고 나서야 흡족한 미소와 함께 '통과' 도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짜식! 시원하게 잘 잘랐네!). 지시에 불응하면 다양한 대응방법(주로 폭력)을 감수해야 했기에 학생들은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부당한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K중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어떠한 건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염색을 하고 펌을 하며 2~3달 남짓의 짧은 자유를 느껴야 했습니다.


규칙의 어깨 위에서

 요즘은 보기 쉽지 않지만, 스포츠 구단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단체 삭발을 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머리 길이와 성적 사이에 역학 관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거라도 해보자!'라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자발적이며 절박한 시도였죠. 영화 [아저씨]의 원빈은 거사를 치르기 전에 머리부터 정리하고, 가수 이소라 씨가 부른 [바람이 분다]에는 이별 후에 머리를 자르는 여자의 심정이 녹아있습니다. 시위자들이 삭발 투쟁을 하는 모습은 지금도 꽤 많이 볼 수 있죠. 머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감정과 의지, 그리고 개성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자발적으로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자신의 의견과 의지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두발규제는 개인의 의견이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두발규제는 학생들에게 규칙과 합의 위에 폭력과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줬죠. 대화보다는 통제가 쉽다는 것, 존중보다는 폭력이 빠른 효과(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를 본다는 점도 알려줬습니다. 선생님들에게 '규정은 이게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을 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보다는, 색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컸습니다(교무실에선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 북채, 각목, 낚싯대, 단소 등 다양한 훈육 교보재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대답(=꾸중)을 듣기 일 수였죠. '인마,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저세상에서 미소를 짓는 공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어떤 모습이 학생다운 모습인지에 대해서 어떤 지성인이나 현자가 명쾌한 답을 낸 적도 없으며, 사회 구성원 다수가 참여하는 평등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개성과 특성을 무시한 채, 바람직하다 여기겨지는 틀에 쑤셔 넣는 행위 자체가 올바른 행위는 아니죠. 우리는 하나의 개인, 개별성을 갖춘 인격체라기보다는 그저 눈에 보기 좋은 학생, 윗사람의 의견을 일단 수용하는 편이 맞서는 것보다 낫다는 수동적 '인적자원'으로 길러졌습니다.


  가끔씩 이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그때 당시 K학교 선생님들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세월이 흐른 뒤에 지난 시절을 평하는 것을 가혹하다고 말하기에는, 당시에 벌어졌던 일련의 행동들이 그 당시에도 충분히 가혹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의 손에 이끌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