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NJ May 10. 2022

뚜벅이 여행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

돌아온 부메랑

뚜벅이 여행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


뚜벅이의 하늘

 

'자고로 여행을 두발로 걸어야 한다.' 혁신적이고 독특한 여행 지론은 아니지만, 저는 꽤 오랜 시간 이런 방식의 여행을 동경하고, 즐겨왔습니다. 하루에 30~40km를 주파하는 강행군부터, 비교적 천천히 즐기는 여유로운 트래킹까지. 걸어야 보이는 것이 많고, 걸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습니다. 


 유기견, 그리고 들개. 이 두 단어를 듣고 오늘의 주제를 짐작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요즘 뉴스에 '들개'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들개들이 가축을 물어 죽였다, 탐방객이 두려움을 느낀다, 민원이 빗발친다. 매스컴을 통해 만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러하겠지만, '저런 일이 있구나' 정도의 감상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된다면...


 '맙소사,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지도 어플을 뒤지다 알게 된 인근의 한 저수지. 멋진 경치, 개성있는 카페, 절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런 장소를, 이런 날씨에 만난다면 '복 받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지만, 그날은 전혀 복 받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몸무게가 20~30kg은 족히 넘을법한 개가 침을 질질 흘리며 제 앞을 서성이고 있었거든요.


 저는 개를 참 좋아합니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많은 개들이 저를 좋아하기도(수준이 비슷한 친구라 여기는 모양입니다) 했고요. 물론 주인이 있고, 목줄이 있고, 어느 정도 훈련을 받은 친구들이었죠. 시골에서 만난 들개, 아니면 풀어놓는 개(녀석의 상태를 보았을 때 99% 확률로 아니었을 겁니다.)는 조금 색다른 성격의 친구였죠. '나를 반기는 걸까? 아니면 경계하는 걸까? 아니면...?' 저 녀석이 흘리는 침이, 인간이 푸짐한 식탁을 보고 흘리는 침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기만을 빌었습니다.


 하필 주변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차 하나 보이지 않더군요. 젠장! 뚜벅이 여행을 꾸준히 다니면서 이런 강적(?)을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녀석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길을 우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이 따라오기 시작하더군요. 녀석은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닳고 닳은 빨간 목줄도 보이더군요.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침묵과 경계심 가득한 불안한 동반이 시작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위에 앉아 저수지를 바라보면 옆 바위에 뛰어올라 가만히 앉아있었고, 제가 또 움직이기 시작하면 제 앞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들풀을 뜯어먹곤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녀석이 본식사(?)를 하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샐러드를 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던 동행은 동네를 빠져나가던 버스를 붙잡아 타면서 끝이 났습니다(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님의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창문을 통해 멀어지는 녀석을 보며 머리가 복잡해지더군요. '유기견일까? 만약 공격성이 있다면 신고해야 할까? 그러면 안락사를 당하나? 아니면 시골에 풀어놓고 키우는 개일까? 아이들이 길에서 개를 만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구글에 '유기견, 들개, 동물보호소'를 검색했습니다. 다양한 목격담과 경험담, 그리고 사건사고, 개와 싸우는 법(?), 이런저런 측면에서의 분석. 명확한, 그리고 제가 만족할만한 답은 없었습니다.


 제가 유기견인지 들개인지 시골 개인지 알 수 없는 개와 마주쳤을 때 느꼈던 즉각적인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20~30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침을 흘리는 대형견. 그다지 호의적인 인상은 아니죠. 개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담벼락이나 경계석을 따라 빠르게 걷고(개를 한 시선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주먹 크기의 짱돌을 하나 손에 쥐었습니다. 저놈보다 빨리 달릴 자신은 없었거든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고, 우리 사이가 섣부른 이별로 이어지길 바랬습니다.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몰려오는 '안도감'.


 녀석의 목줄, 다소 불편해 보이던 오른쪽 다리. 정확한 사연을 알 수 없으나 녀석에게 인간의 손때가 꽤 많이 묻어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를 빤히 올려다보며 지은 반가운 표정(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퇴로를 절실히 찾고 있을 때 앞장서서 버스 정류장으로 나를 유인(?)하던 당당한 뒷모습. 어쩌면 이 녀석은 '위험한'존재 이전에 '불쌍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발지로 돌아가는 길에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늦은 밤, 잠이 들기 전까지 고민이 멈추질 않더군요.




제가 뚜벅이 여행을 권장하진 않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걷다 보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회적 문제(유기견, 들개, 인간과 동물의 공존)를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어떤 참여적 행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안전과 건강을 두고 모든 이들이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런 일을 직접 경험한 이상,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쏟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원인은 많지만 명료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문제들. 여행은 종종 즐거움과 유쾌함을 넘어선, 우리가 외면하던 세상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비춰 보이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바람이 태어나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