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변천사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지역 최악의 급식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항상 배가 고픈 혈기왕성한 학생들은 부실한 학교 급식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레 매점 매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일하는 아주머니가 4~5분 정도 계셨습니다). 성황리에 영업을 이어가던 학교 매점은 '때때로' 깨끗했습니다. 쉬는 시간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매점을 향한 질주, 주문, 흡입, 퇴근까지 이루어졌죠. 한바탕 전쟁이 치러진 매점 테이블은 다양한 얼룩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매점 아주머니들은 행주 하나를 들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얼룩을 슥슥 닦아내곤(= 이리저리 퍼뜨리곤) 했습니다. 이 시절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행주를 빨아 쓰고, 건조대에 줄줄이 널어 햇빛 아래 말리곤했죠. 이런저런 양념이 물든 얼룩덜룩한 행주는 길에서, 뒷골목에서 바람과 먼지 사이에서 천천히 말라가곤 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식당이 정체모를 용액이 담긴 분무기를 들고 테이블을 닦곤, 아니 '소독'하곤 합니다. 가끔은 이곳이 병원 수술방인지, 식당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세척액이 한창 식사 중인 테이블로 넘어와 야릇한 향(우리가 '화학' 냄새라고 부르는)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는 미용실이 아닌데.... 마스크를 쓴 채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세척액을 분무하는 직원과 노 마스크 상태로 음식과 음료를 마시고 있는 손님. 가끔은 저 분무기에 '무엇이 들어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공중에 분사하듯이 뿌리는 행위도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물론 악의는 없겠지만은. 행주에 직접 분사하거나 뭍히는 방식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코로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같은 전염병을 경험하며 청결, 위생 개념이 조금씩 변해온 것 같습니다. 빨아 쓰고 말려 쓰던 행주는 분무기 속 세척액과 일회용 행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수저가 놓이는 테이블에, 식사 중인 우리의 코와 입에 새로운 세척액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과도한 위생 개념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행태를 개선과 진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자연 추출물로 세척액을 만든다 하더라도 이것이 흡인되었을 때 위해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위생을 위해서 사람과 공기를 알코올 비커에 담글 수는 없는 노릇이죠. 과도한 보여주기 식 위생인지, 저의 과도한 염려인지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도 혼란스럽습니다. 식탁이 더 깔끔하게 살균되는 동안, 우리의 삶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던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반복적인 유해물질 흡인이 일으키는 신체 손상의 위험성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던 물질이 독약으로 판명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위생을 위해, 손님들을 위해 사용하는 세척액 분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추론이 지나친 비약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다만 정부가 공인했던, 연구기관이 인증했던, 기업이 홍보했던 살균제에서도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다양한 세척액이 모두 흡인 가능한 물질로 구성되어있을까요? 올바른 세척액 사용 방법을 제대로 안내하고 있을까요? 다0소, 이0트, 롯0마트에서 판매하는 수많은 세척제에는 흡인에 대한 경고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세먼지, 황사로 창문 열기가 겁나고 바이러스와 대기 오염으로 공기 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는 세상입니다. 간단한 행동 변화로 바꿀 수 있는 일상의 부분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개선하는 것이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인들이 신발을 신고 침대에 눕는 것에 질겁을 하지만, 여전히 국과 전골을 함께 먹고 길에는 흡연자들의 침과 꽁초가 굴러다니는 OECE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미국 일부 주에는 결핵 전파를 막기 위한 만든 침 뱉는 행위 금지 법률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소매로 막거나 고개를 돌리는 행위가 매너라고 여겨지기 시작한 시점이 그리 오래 지난 것 같진 않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분무 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관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손에 주어진 도구는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의구심을 가지는 행위가 작은 논의만이라도 이끌어 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