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시절 학교 수련회를 떠올려보면 욕설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살면서 처음 만난 빨간 모자 교관은 호각을 물고 학생들에게 얼차려를 주곤 했죠. 군에 입대를 하고 나서야 수련회에서 경험했던 일련의 행동이 입대한 성인을 대상으로, 그것도 군기를 잡기 위한 목적의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20년 전의 교육 현장은 창의성과 독창성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통제와 권위와는 너무 가까웠습니다. 물론 학교 교문에는 '활발하고 창의적인 00 학교 학생들'이라는 플래카드가 1년 내내 붙어있었습니다.
출생률 0.78명. 이제는 아이가 귀함을 넘어 존귀한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에게 지도사와 가이드는 당연히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며, 어린이 보호 구역은 이전 시대보다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고, 학생들은 단군 이래 가장 큰 권리와 다양한 선택지를 누리고 있습니다(체벌의 야구 방망이는 이제 학생부의 펜촉으로 변신했습니다).아이들의 수가 줄었다는 현실은 수학여행 버스만 보아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45인승 버스에 반 정도 찬 한 학급의 아이들. 때로는 2개 반 아이들이 한 버스에 함께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오전반-오후반으로 수업을 나눠 들었던 세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변화겠죠. 관광지 주차장은 중년의 단체 여행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시골 학교는 전교생이 버스 3대로 함께 움직입니다. 소아과청소년과의 폐과 선언은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정말 많았었습니다.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한 가정에 5~10명 가까운 형제자매가 있었죠. 이제는 3명이면 "애국자네"라는 농이 절로 나옵니다. 노인은 살아남았고 아이는 줄었습니다. 노-키즈 존 열풍은 이전의 위상을 잃고 노-시니어 존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가 줄어들자 외국인 복지 정책이 부랴부랴 만들어지고, 대학생이 감소하자 장학 혜택이 대폭 늘어나고 특성화 사업이 발족합니다. 최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미국에선 거래가 금지된 CFD 부실화 이슈는 태평양을 건너는데 수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16년간 300조에 가까운 저출산 대책이 부랴부랴 만들어지고 사라졌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참 빠르게 반응 '하기만' 하고 변화하는 '듯한' 사회처럼 보입니다.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어야 할까요? 옛날에는 쌀이 귀했고, 달러가 귀했고, 데이터가 귀했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의 넘쳐흐르는 곳간에는 사람이 들어갈 틈이 없고, 숨 쉬지 못하는 것들만이 쉼 없이 분열하고 증식합니다. 사람이 늘고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시대의 만연한 풍조가 너무나 많은 가치를 희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귀한 시대입니다. 아이가 귀한 시대입니다. K-판도라 상자의 바닥에는 너무나 많은 무거운 존재들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