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지와 애월에서 제주 해녀를 처음 본 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귀를 쫑긋 세운 채 토박이들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 저에게 쪼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합니다.
"쌤, 무슨 말이에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들었는데..."
"혼저옵서예 같은 거죠?"
"유튜브에 제주도 할머니 인터뷰가.... 쌤은 알아들어요?"
"바다 쪽 30m 이전은 뭔 말이에요? 바다 안 보이는데?"
부산에서 나고 자라 경기도를 거쳐 제주도에 자리 잡은 지도사는 재빨리 구글링을 시작합니다. '메께라? 뭔 소리여?'
제주도가 한국인들에게 '이국적이다'라고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제주어'라는 독특한 언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역 방언이 아니라 '제주어'라고 부를 정도로 제주 토박이들의 언어에는 본토의 언어와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많습니다. 작년에 방영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제주도의 삶이 널리 알려짐과 동시에 제주어 표현도 유행처럼 번져나갔죠. 물론 도민들은 "고두심 삼춘"만 진또배기라고 했지만. 인심 넘치고 말수가 적은 백발의 시골 어르신도 사투리만큼은 AI보다 정확하게 평가합니다. "육지에서 완?" 저의 어설픈 제주말은 언제나 여지없이 들통나고 말았죠.
제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동쪽을 여행하면서 오래된 식당을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간 자리에는 이렇게 적힌 A4 한 장이 붙어있었습니다. '바다 쪽으로 200m 점포(店鋪) 이전!' 바다의 도시라고 불리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건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안내판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장님이 재치 있고 특이하신 분이네?' 그런데 이런 안내판을 붙인 가게가 이곳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다 쪽으로 쭉' '한라산을 끼고돌면서...' 올레길에서 만난 토박이들에게 바다와 한라산은 하나의 나침반이자 대낮의 북극성이었습니다. 제주도는 시내를 제외하면 바다와 한라산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보이는 섬이니 실제로도 아주 유용한 길 찾기 방법이었습니다.
오름, 바당과 같은 자연부터 각재기, 도새기 같은 동물(=먹거리)과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혼저옵서예' 문구까지. 동남 방언과도 겹치고, 일본어와도 유사점이 많은 특이한 말을 사용하는 외딴섬. 타지 사람들이 불편하고 낯선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사회가 꽤나 여유로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많은 사실에 관용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회라 느껴지건만, 지역감정과 남녀차별 같은 고약했던 관습 또한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동수단의 발달과 빈번한 여행은 산 건너 바다 건너 사람들이 제법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이제 <위험한 상견례> 같은 영화는 공감보다 의아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온, 감귤 머리핀을 머리에 꽂은 학생들은 조금 전에 들은 제주말을 흉내 냅니다. 으레 강한 문화가 약한 문화를 잠식하는 것을 우리는 상식이라 여깁니다. 이런 희뿌연 여명 속에서 한 줌의 길을 여는 가녀린 심지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더욱 큰 빛줄기로 공명합니다. '살아남는 것이 강하다'는 말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여 진부하다 느껴지지만, 이런 말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으로 터져 나올 때나의 언어가 하나 생겼다는 희열이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