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석, 사라진 돌 이야기

by RNJ
산, 산담

어린 시절 종종 방문했던 거제도 몽돌 해수욕장. '몽돌 반출 금지' 표지판이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누가 무겁게 돌을 들고 가?'라는 생각이 곧장 들었지만, 매끈하게 잘 깎인 반질반질한 돌 표면을 보고 있자니... 어린 마음에 하나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몽돌이 파도에 구르며 내는 경쾌한 마찰음, 이 소리가 오랜 시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몽돌을 기억 속에만 담아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베란다 화분에 놓인 구르지 못하는 몽돌은 동네 놀이터에서 주워온 금이 간 보도블록과 어떠한 차이도 없을 겁니다. 한때 제주 공항에서 '수거'되는 제주 돌이 트럭 수대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수거된 돌멩이는 제주 돌문화 공원으로 안전하게 회수되었다고 하네요.


기이한 돌로 유명한 돌문화 공원에선 목석원에서 넘어온 동자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주의 산담(무덤을 둘러싼 돌담) 안에는 산(제주말로 무덤)과 더불어 서로를 빤히 바라보던 동자석 2개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동자를 부릴 정도로 여유가 있던 망자의 후손들은, 조상님의 망령이 부릴 동자를 무덤 입구에 세웠다고 합니다. 제주가 신혼 여행지로 사랑받는 시절부터 동자석은 끊임없이 도난당했으며, 육지에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정원 장식용 인기상품이라고 합니다. 벌초를 하러 제주도에 돌아온 후손들은 명절을 앞두고 동자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떠오릅니다.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에서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여 통상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프로이센인의 만행이었죠. 이로 인해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쇄국 정책은 남연군 묘의 석회층만큼 견고해졌습니다(오페르트는 무덤의 석회층을 뚫지 못해 도굴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남연군 묘와는 달리 동자석은 산담 안에 덩그러니, 몹시 취약한 상태로 가만히 서있습니다. 어둠이 깔리면 무덤을 찾아가서 동자석을 옆구리에 끼고 훌쩍 달아나면 그만이니 참으로 편리한 도굴이었을 겁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화물선에 동자석을 밀반출하려는 시도가 경찰에 종종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버스에서 저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어떤 돌이든 챙겨가면 안 됩니다!)을 듣던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해안가 돌에 무슨 주인이 있냐고. 유네스코 보존 지역(= 동네 뒷산처럼 보이는 장소)에 왜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가야 하나고 묻습니다. 학생들에게 텅 비어버린 산담과 오페르트 사건, 새로운 감각과 체험이라는 슬로건 아래 파헤쳐지는 숲과 땅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공짜로, 절실한 호소로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라는 점이 모두를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모든 존재를 소유와 자본으로 평가할 때 인간은 한 더 궁핍해지는 것 같습니다. 순수함이 사라진, 잃어버린 풍경은 웹사이트 구석과 고문서 도서관으로 밀려납니다.


"바당 이쁘?"


서우봉을 넘어 다려도를 지날 때 만난 동네 할망이 건넨 인사말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제국이 도굴품 전시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때, 제주도 돌문화공원에 수북이 쌓인 까만 돌멩이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의 기를 보충하고 사람들을 보호하던 방사탑과 돌하르방은 자신의 두툼한 무게감에 안도하고 있을까요. 언제나 가녀리고 약한 것들부터 순차적으로 뽑혀 나가는 세상입니다.


거지, 도둑, 대문이 없는 섬이라 '삼무(三無)'라는 이름이 붙은 집 주변의 공원에서 토박이 어르신과 배드민턴을 치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가 원래 빈민들, 거지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고. 이 근방이 전부. 빌어먹고 산 거야, 그때는 그랬지." 이제 삼다도에 남은 것은 바람뿐이라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야자수, 변화와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