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가 종착점에 도착하자마자 자율 주행모드로 스스로 전환합니다. 완만한 경사길을 부드럽게 오르는 카트. 핸들을 놓고 뒤통수에 깍지를 낀 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아이들은 가을이 저물어가는 초겨울 제주의 산등성이를, 색이 깊어지는 한라산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앱으로 주행 기록을 확인하고 하이라이트를 공유합니다. 전광판에는 오늘자 랭킹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습니다. 이 대범하고 어린 레이서들이 참전할, 3~4년 뒤의 도로 상황을 상상하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아이들이 제주 수학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정은 단연코 '카트 체험'입니다. 30분을 기다려도, 1시간을 가만히 서있어도 불만이 전혀 나오지 않는 사랑스러운 일정. 아이들은 트랙을 바라보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두 눈과 귀를 꼭 닫은 학생도 보입니다(긴장감이 감돌던 도로주행 대기실이 떠오르네요). 브레이크와 엑셀이 어디에 있는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학생들, 헬맷을 쓰고 아이들 사이로 끼어든 선생님이 한 마디씩 거듭니다. "가소로운 것들, 운전이란 말이야..." "내가 10년 무사고 운전자인데..." 그래서 오른쪽이 브레이크냐고 묻는 질문이 곳곳에서 튀어나오자 선생님 얼굴이 하얗게 변합니다. 사고는 나 하나 조심한다고 안 나는 것이 아니죠.
제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왔을 때에는 시대에 걸맞게 카트가 아닌 말타기 체험을 했었죠. 직원의 지시에 따라 커다란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거대한 흑마. 안장 위에서 불안한 시선으로 말 뒤통수만 노려봤던 기억이 나네요. 말이 달리기(=팬 서비스)라도 하면 친구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은 재미를 가볍게 뛰어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라는 동물과 함께 달린다는 설렘, 말의 강력한 등 근육이 허벅지에서 느껴질 때 생기는 유쾌한 희열이 있었습니다. 탑승 전에 배운 간단한 지시가 말에게 먹히기라도 한다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통에 성공했다는 기분도 들었죠.
요즘은 말체험보다 카트 체험을 하는 학교가 훨씬 더 많습니다. 트랙을 정신없이 가로지르는 카트의 속도는 30km/h을 가볍게 넘습니다. 액셀을 밟자 카트가 양 옆으로 요동치며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거칠게 왕복하며 추월과 역추월이 이어지고, 매연과 먼지로 덮인 트랙은 매드맥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자동차와 한 몸이 된 것 같은, 그리고 발바닥으로 세상을 좌우하는 기분.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기분을 생애 처음으로 느꼈을 겁니다. 주말 내내 애마를 정성스럽게 갈고닦는 아버지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려나요?
자동차와 트랙터는 물론이고 이제 제주도의 카트마저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핸들을 벗어난 손이, 유리창을 이탈한 눈이 어디를 향할까요? 자율주행은 삭막한 도로, 신호등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에 접속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침범과 간섭이 빈번한 정보화 시대 속에서 침묵과 사유의 시간을 확보할지, 더 많은 데이터 속으로 천천히 잠식될지. 꽉 막힌 퇴근길 위에서 핸들을 잡고 노래를 열창할 때 느꼈던 속박된 자유를 앞으로도 느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작동하는 핸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레이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방을 제공할 겁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율주행 자동차는 서재가 되겠죠. 누군가에게는 공방, 영화관, 화실, PC방이 될 겁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변화하는 세상을 관조하는데 할애할 겁니다. 중고등학생에겐 숙제가 무한히 이어지는 이동식 감옥이자 자습실이 될지도 모르죠.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마케팅과 스토리, 첨단 기술의 콜라보가 필요합니다. 전지구가 하루 생활권이 되어버린 이상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면, 누군가는 기술과 문화, 역사와 스토리를 관광 상품에 접목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SNS를 통해 친구, 가족, 불특정 다수와 시공간을 공유하는 하나의 시발점이자 연결점으로 작동합니다. 인스타그램의 수학여행 해시태그는 30만 개에 육박하며, 비슷한 키워드를 공유하는 또래 세대는 강력한 연대 기억을 형성할 겁니다.
수학여행에서 미래의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놀이는 스포츠가 되었고, 노하우는 첨단 기술이 되었습니다. 카트 체험을 마친 기민한 학생들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모두가 앞을 보며 달려야 하는, 누군가 하루종일 차를 몰아야 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 과거의 허물이 되어 소멸합니다. 변화를 인식하고 체험하는 여행, 수학여행에서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자 교육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