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귤 굴러가요!"
온 버스가 귤판입니다. 버스 복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자그마한 귤. 주인 잃은 귤을 하나 둘 주워 담다 보니... 족히 한 봉지는 채울 것 같네요. 학생들은 얇은 비닐봉지가 터지도록 귤을 담아왔습니다. 다람쥐처럼 부푼 볼과 감귤물이 들어 노랗게 변한 손가락. 고흐가 제주도에 살았다면 '귤 먹는 사람들'을 그렸을 겁니다. 즐거운 표정과 밝은 색감으로 가득한 그림을.
올레길을 걸어도, 일주서로를 달려도, 잠시 관공서에 들려도. 감귤나무는 정말 제주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보리차를 한병 사니 거스름돈으로 귤이 돌아옵니다. 쌀국수를 다 먹으니 디저트로 귤이 나옵니다. 지인이 주먹만한 귤 한 봉지를 선물합니다. 온 세상이 귤입니다. 초콜릿도 귤, 국수 위에도 귤, 막걸리도 귤맛. 육적이 제주도에 친척이나 지인이 있었다면 귤을 훔칠 이유가 전혀 없었겠죠? 소매 속에 귤을 숨기는 육적을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을 겁니다(무사 그라멘? 집에 귤 없수꽈?).
*육적 : 후한 말 삼국시대의 관료. '화귤유친'이라는 성어로 널리 알려진 이름난 효자.
전지가위를 하나씩 챙 아이들이 감귤 나무 숲 속으로 숨어듭니다. 목이 마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귤을 까서 목을 축입니다. 감귤의 빛깔과 탄력에 감탄하고, 수렵채집인이 되어 꼼꼼하게 먹거리를 선별합니다. 가판대에 산처럼 쌓인 귤을 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주부가 떠오릅니다.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치며 전달되는 귤이 학생들이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놓여있습니다. 자연에서 곧장 입으로 이어지는 달콤함은 최소한의 노동을 만나 더욱 감칠맛 있게 변합니다. Get it yourself! 자급자족의 즐거움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감귤 따기 체험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상경한 선생님은 향수(鄕愁)에 젖고, 학생은 곧 넘겨질 페이지에 향수(香水)를 묻힙니다.
제주 사람들은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농부가 애지중지 키운 소를 팔아 자녀들의 대학 학비에 보탠 것처럼. 귤로 가득 찬 제주도를 보고 있자니 제주의 감귤 나무들은 제 역할을 200% 이상으로 잘 해낸 것 같습니다. 관광객들은 제주의 귤을 먹고, 따고, 마십니다. 혀뿌리 끝에 새겨진 싱그러운 과즙의 향과 바람 속에 풍만했던 풋풋한 풀내음과 흙냄새. 이곳은 감귤의 고향으로 기억될 겁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우리보다 오래오래.
억센 지력을 쉼 없이 거스르는 거친 뿌리. 감귤나무는 자갈로 가득한 제주도의 땅을 파먹고 자랐습니다. 고행은 줄기를 두텁게 했고, 연약하고 얇은 껍질 아래에선 어린 속살이 제대로 익어갑니다. 인간의 열매가 자연 열매를 먹습니다. 얇은 가지 끝자락에 달린 푸른 빛깔의 학생들. 내일이면 이별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가지로 돌아갈 겁니다. 축축한 땅내음, 그 속을 미동 없이 파고드는 삶. 우리네 삶은 감귤나무의 생애와 별반 바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점점 흙내음에 익숙해집니다. 이젠 신맛을 느끼기 위해 귤을 먹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