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 내에서도 '신'제주라고 불리는 도회지에 살고 있다. 몇 년 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제주도 이주를 결정했고 연동이라는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서야 알게 되었지만 연동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동네였고, 나는 가장 제주스럽지 않은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한 달을 머무를 계획이었다면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동네로 갔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 목적이었기에 일자리와 기회가 많은 도시에 머물러야만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을 인솔하며 생활비도 벌었다.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장소를 학생들과 함께 여행하며 편식과 다름이 없었던 나의 여행 방식을 돌아볼 수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부지런히 동네 골목길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오래된 책방과 한적한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새로 개업한 아트카페 한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음 해에 전시회를 열었다. 내년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른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홀로 섬을 찾아온 육지 이주민은 어느새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아이가 생기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도전하게 되었고,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 일을 우연찮게 발견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뻤다. 보람도 느꼈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가르쳤고 평일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여행을 떠났다. 물론, 지금은 매일매일이 육아와의 전쟁이다. 어쨌든, 제주도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서는 많이 보아야 했다. 전시회 날짜가 다가오자 조바심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준비만 했다. 경험을 통해 가락을 갖춘 작가님들의 도움으로 준비한 그림과 시를 벽에 모두 걸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이 술을 마셨고 다음날 해장국을 먹었다. 교통체증과 산과 바다를 넘어온 지인들이 갤러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고 건강한 출산을 기원했으며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정신없는 3주를 보냈다. 얼떨떨한 감정이 사라질 때 즈음에 그림을 벽에서 떼어냈다. 운이 좋았던 그림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제주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 이 아름다운 문장 뒤편에 숨겨진 삶의 속내를 이곳에 털어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