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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섬' 사람들

by RNJ


육지 사람의 눈에는 제주도 잔치가 특별해 보인다. 하루종일 문을 열어둔 채 손님을 받고 보내고. 꼭두새벽까지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경조사를 보고 있자면... 조금씩 진심이 흐려지는 현대 축제 문화의 마지막 생존자를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개업식을 하고 있는 가게에 손님으로 방문했었는데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비틀비틀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처음 뵙는 동네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나의 옆자리에 앉으셨다. 제주 방언 실력을 스텝업 할 수 있었던, 흥겨운 단기 속성 과정이 아니었을까(말씀하시는 내용의 70%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의 첫 전시회도 이런 잔치 문화 속에서 첫 발을 불쑥 내딛게 되었다.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큰 도시에는 심야 서점, 야간 책방과 같이 기이한 취향을 가진 소수의 독서 애호가를 품어줄 공간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제주도는 서브웨이가 생겼다는 '뉴스'로 30분을 떠들 수 있는 무언가 덜 채워진 도시였고, 가게들은 대체로 일찍이 문을 닫고 임시 휴무 공지를 반드시 방문 전에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하는... 늦게 일어나서 일찍 잠드는 도시였다. 공터와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제주도의 푸른 밤이 너무나 길고 지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늦은 저녁에 지도에 새롭게 등장한 아트카페를 찾아갔다. 와인바 구석에서 즐기던 야간 독서에 조금씩 싫증을 느끼고 있었던지라, 새로운 장소에서 새 마음으로 책을 뒤적여보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카페문을 열었는데....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손님을 낯설게 바라보는 이상한 손님과 그림으로 가득한 카페.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먼저 아이스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커피는 사라지고 맥주 한 병이 앞에 놓여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사람들 사이에 불쑥 끼어들어 흥겹게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책은 바 테이블 근처에 대충 던져놓았다. "가게 개업식에서는 같이 한잔 해야 하는 거야!" 가장 육지와 닮아있는 '신'제주도 역시나 제주도였다. 나는 또다시 가게 개업식에 단단히 결박당하고 말았다.


낯선 이방인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아트 카페. 사장님과 지인들은 첫 손님을 자신들의 테이블로 끌어당겼으며, 가게의 모든 테이블이 붙자 하나의 잔치상이 만들어졌다. 잔과 병이 부딪히고 들뜬 목소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잡아먹고. 다음 날 아침, 어떤 이야기도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지만, 흥겨움이 가득한 밤풍경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20년 가까이 이어온, 마치 한가족 같았던 카페 안의 사람들은 나를 위해서 대화 중간중간에 도돌이표를 찍어줬다. 사실 대화의 맥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숙취에서 겨우 해방된 첫 손님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한번 가게를 찾아갔다. 무언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옅은 확신만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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