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풍차는 물이 아니라 전기를 퍼올린다.
신창 해안도로에는 풍차2.0을 구경하려 모인 사람으로 가득했다. 짭짤하고 날 선 바닷바람은 모래 언덕이 쌓일 시간을 땅 위에 남겨두지 않았다. 티끌은 바람을 타고 산자락을 거슬러 오른다. 돌담 밖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거칠게 휘어졌다. 노을이 지고 바람이 불어오자 지친 발걸음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평화와 환경의 상징이 되고자 하는 제주도는 '카본 프리' 아일랜드를 향해 키를 잡았다. 신창 해안도로뿐만이 아니라 김녕, 월정리, 함덕, 가시리 등 바다와 산을 가리지 않고 솟은 발전기의 군무에선 긴장감 어린 불안한 평화가 느껴졌다. 하얀 날갯죽지를 따라 언덕 위의 그림자가 바삐 움직였다. 자연을 거스르고자 했던 인류는 자연을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혈기 왕성한 발전기가 교대로 쉬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전력 과잉 공급으로 5년 동안 300일 정도 발전기가 멈춰야 했다(넉넉한 휴일이 부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협재 앞바다에는 새로운 풍차가 뿌리내릴 준비를 마쳤다. 홈스테드법이 만든 통통하게 살이 오른 프런티어 정신이 떠올랐다.
태양은 매일 새로운 세상을 토해낸다. 열과 압력은 주체할 수 없는 반발심을 만들고 1억 5천만 킬로미터 너머의 이웃은 묵묵히 자신의 배를 불린다. 풍요로운 땅을 배정받지 못한 인간은 대지에 예속되지 않은 자원을 하늘에서 채굴한다. 자연을 향한 거대한 반항심은 이제 하나의 볼거리가 되었고. 이 모든 혜택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핵에서 시작하며, 우리는 작은 것에서 커다란 위안을 얻고 있었다. 태양은 핵과 전자구름으로 표현했고, 자연의 해바라기와 인간의 풍차를 합하여 모든 존재가 같은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복잡하게 구분 지어진 세상은 사실 하나의 색감을 사용한다. 그림을 통해 자연과 인공을 가르는 벽을 백과 흑으로 허물고 섞어내고 싶었다. 가끔은 색깔이 아니라 실루엣만이 필요하다.
언젠가 제주도가 에너지 자급률 100%를 달성한다면 본토와 이어지는 해저케이블을 탯줄처럼 잘라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에너지를 수입하는 섬에서 수출하는 나라가 되길 꿈꾸고 있다. 발전소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인프라 증설을 동반하며 제주 전반에 새로운 송수로가 건설될 것이다. 한번 탄력을 받은 풍차는 거침없이 돌아간다. 개발되고 부서지는 와중에 누군가는 쫓겨나고 밀려난다. 흔들리는 어선에 실린 화난 어민과 해녀는 새로운 풍차 건설지 주변에서 힘없이 표류한다. 예나 지금이나 풍차는 사람 없이 힘차게 돌아간다. 항의를 들어줄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제주 바다에서 풍차로 돌진했던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세속적인 산초는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탈피인지 절단인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