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멤버들은 나를 "난시작가"라고 불렀다.
일할 때가 바로 내가 쉬는 때이다.
파블로 피카소
전시회라는 분명한 목적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예술은 노동이구나!
그림을 완성하는 일을 함께 상상해 보자. 먼저 주제를 정하고 재료를 준비한다. 필요한 사진과 자료를 찾아 인쇄한다. 대략적인 구도를 고민한다. 휘갈기고 고민하고 고치고. 후회하고 만족하고. 더 이상의 해답이 없을 때 그림에서 손을 뗀다. 시험 삼아 벽에 살짝 붙여놓는다. 이리저리 오가다가 자꾸 그림과 시선이 마주친다. 자꾸 외면하고만 싶어 진다.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터치 하나에 수백 번의 망설임이 오간다. 물론 단 몇 시간 만에 만족감을 선사하는 영특한 그림도 있었다. 좋든 싫든 모두 나의 손가락이었다.
아, 그림에 앞서 한 가지 빠뜨린 내용이 있다. 전시회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적절한 장소부터 물색해야 한다. 대략적인 날짜가 잡히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다.
'진짜 큰일 났다!'
그려 놓은 그림은 얼마 없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팸플릿을 검토하고 여기저기에서 소박하게 소문도 냈다(무료 전시야, 무료!).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미술용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전시에 필요한 잡다한 장비를 구매했다. 섬이라서 그런지 좋은 물건 하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육지로 나가자니 천장을 뚫고 하늘로 치솟은 비행기값이 너무나 무서웠다.
전시회 D-1. 마지막까지 그림의 배치를 고민하다 트렁크에 그림을 모두 욱여넣고 전시장으로 달려갔다. 6명의 작가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를 정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림 하나를 걸 때까진 참 좋았다. '멋지다!' 옆에 다른 그림을 걸고 나니 뭔가 이상했다. '잠시만...' 정답이 없는 시험지에서 나는 질문부터 만들어야 했다. 무뚝뚝한 벽 앞에서 머리가 하얘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겨?'
얼추 그림의 위치를 정하면 이제 수평을 맞춰야 한다. 침침한 눈을 이리저리 흘깃대며 작품을 이리저리 흔들어놓았다. 기가 막히게 수평을 잡지 못하는 나는 '난시 작가'라는 별명이 생겼다(젊은 놈이 벌써...). 작가님들의 훈수와 감독 아래에서 마침내 그림을 모두 걸었다. 이제 시를 벽에 붙일 차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무색하게 이마에는 송글 송글 땀이 맺혔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우측으로 몰린 것 같았다. 절망! 아메리카노에서 단맛이 느껴졌다. 머리가 지끈거릴 땐 몸을 괴롭힐 필요가 있다. 30도 무더위 속에서 낑낑대며 현수막을 설치하다 보니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수백 시간을 모아서,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인생의 부분 부분을 이리저리 긁어모으고 뭉쳐서 하나의 벽을 채웠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영감을 가지고 있다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노동의 시간이 주어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것 같다. 목적 없는 노동은 즐겁다. 사실 전시회를 준비하는 이 모든 과정을 놀이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것 같다. 우리는 어떤 보장도 대가도 없이 즐거이 그림을 걸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쿨하게 헤어졌다. 무심한 사람들의 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여행에서 계획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듯이 전시회도 마찬가지였다. 감상은 노동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졌고, 이제 차가운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쉬움 한 보따리, 살짝 부풀어 오른 즐거움 한 소끔을 마음에 풀어내며 전시장을 떠났다. 꽃다발이 하나 둘 도착했다. 오랜 시간 방치한 책상부터 정리를 시작한다. 쉬는 시간은 단숨에 끝나버렸다. 다시 노동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