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도시에서 회반죽 오름으로

제주의 하모니(2023)

by RNJ
제주의 하모니(2023)
참된 창조자는
가장 흔해 빠지고 미천한 것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뭔가를
늘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내가 살고 있는 신제주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을 위해 마련된 도시 같다. 영어와 중국어만이 존재하는, 한글이 실종된 간판의 군집은 이곳에선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오래된 주택이 부서지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1층에는 기념품샵이 들어섰다. 우후죽순 솟은 타워 크레인은 도시의 번영과 성장을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신도시 최고봉 드림타워를 중심으로 도시형 생활주택과 분양가 기록을 갈아치우는 아파트가 보행자의 하늘과 거주민의 햇빛을 가리고 있다. 도시가 점점 잿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처음 제주도로 거처를 옮길 때, 그리고 신제주에서 1년 정도 살았을 즈음에 언젠가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한적한 동네로 집을 옮기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집을 3번 옮기는 동안 한적한 동네는 결코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아이가 생기니 시골 생활은 열 발자국 멀어졌다. 만일의 사태를 위한 소아과와 응급실이 모두 갖춰진 병원, 가족을 위한 일자리는 바로 도시에 있었다. 도시는 포기하기 힘든 실용성과 낭만, 친숙함과 권태로움이 모두 존재하는 애증의 장소가 되었다. 제주도에 살지만 제주의 자연을 누리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제법 달려야만 했다. 반쪽짜리 제주살이었다.


18층. 건물의 숲 속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층 오피스텔 입주였다.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서 에펠탑 1층 식당만을 이용했다고 한다. 모파상과는 반대로 나는 신제주에 드리운 건물의 그늘에서 멀어지기 위해 월세와 층수를 함께 높여야만 했다. 오피스텔 저층은 대체로 햇빛이 들지 않았고 따듯한 기온과 충분한 습기 아래에서 덩치를 키운 바퀴벌레의 춤사위를 밤마다 구경해야만 한다. 도심에서 멀어지고자 했던 소심한 저항은 한라산과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반-자연, 반-시티 뷰 고층 원룸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베란다의 두툼한 창틀이 짬짜면 그릇처럼 느껴졌다.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신제주를 24시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아무리 늦은 밤이라 하더라도 노동을 끝마치지 못한 인간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아른거렸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빠지지 않고 아파트 옥상에서 운동하는 아주머니의 근면함에 경외심을 품을 수 있었다. 도로 한편에선 가로수가 뽑히고 있었고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플래카드가 공사장 가림막에 애처롭게 매달린 채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었다. 새로 완공된 오피스텔의 검은 창문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의 색감이 부족한 도시에도 다양한 선율과 활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도시를 외면하고자 했던 신도시의 주민은 고층 건물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했다.


생명의 신호가 없는 돌과 물로 이루어진 폭포에서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듯이 회반죽의 오름에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자연에서 분리시키는 행위는 오만과 편견이 아닐까? 돌담으로 이루어진 올레길도 제주였고,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직선의 도시도 모두 제주의 풍경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이 제주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었듯이, 촘촘하게 들어선 신제주의 건물은 펭귄의 허들링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차가운 분출이 새로운 땅과 벽을 세우고 있었다.


한라산과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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