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잔잔한 법환포구와 범섬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태풍이 올 때마다 온몸이 쫄딱 젖은 리포터가 바람과 비의 강도를 알려주는 단골 세트장. '태풍 한반도 상륙'이라는 헤드라인이 걸리면 법환 포구의 거친 풍랑과 휘어진 야자수 영상이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죠. 태풍과 이목이 사라진 평온한 포구는 마을 할망들의 몽둥이질 소리와 푹 젖은 갈옷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전부입니다. 제주도에 차가운 용천수가 솟는 곳에는 반드시 오래된 목욕탕이나 빨래터가 남아있습니다.
제주 올레 6코스를 걸을 때는 언제나 섬을 이정표로 삼고 걸었습니다. 별섬, 문섬, 섶섬.... 발바닥이 아파오고 권태로움이 느껴질 때쯤 새로운 섬이 등장합니다. 범의 모습을 닮은 범섬, 민둥산이라는 의미가 담긴 문섬, 숲이 우거진 섶섬. 3~5km 간격으로 떨어진, 비슷하게 생겨먹은 3곳의 섬을 지나갈 때는 뫼비우스 올레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듭니다. 마지막 섬을 끝으로 막막한 남해가 장애물 없이 펼쳐집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주로 버스 안에서 바다를 봅니다. 여행사는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고요한 바다 산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수학여행은 티켓 판매소 사이를 질주하죠. 푹신한 버스 좌석에 몸을 기댄 학생들은 가빠진 호흡을 느낍니다. 예민한 아이는 파리 신드롬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죠. 수학여행은 여전히 오래된 전통이자 산업이라는 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버스 창문으로 만나는 바다와 섬은 윈도 기본 바탕화면 보다 싱그러움이 부족합니다.
"섬 속의 섬이네요!"
올레길에서,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해변에서, 우도 선착장에서 한 번쯤 듣거나 하게 되는 보편적인 수사. 누구도 '제주도와 범섬' 또는 '섬과 섬.'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일선이 아니라 수직선에서 관계 지어지는 섬과 섬의 관계. 당연히 더 큰 섬이 작은 섬 위에 올라섭니다. 수직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런 표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섬 이름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얼마 전에 함께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과거와 추억으로 흘러갔고 어쩌다 보니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고2 때 제주도에... 갔었지 않나?' 놀랍게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제주의 풍경이 흐릿하게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바다와 숲을 걸어보지 못했고 정신없이 버스에 실렸다가 또다시 내려졌습니다. 리조트에 돌아오면 술기운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선생님이 방문을 두드리며 순찰을 돌곤 했습니다. 마지막 밤에는 '한라산'이라는 특산품을 슬쩍 문 앞에 두고 가시곤 했죠.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숙취에 시달렸습니다.
수학여행 시즌은 봄에 시작하여 가을이면 끝이 납니다. 일상에서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느라, 멀미에 시달리느라, 빽빽한 일정에 치여서 축 늘어진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거대한 동굴이 연상됩니다. 겨울잠에 빠진 곰으로 가득한 어두운 동굴. 서늘한 에어컨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최신 가요가 끝없이 흘러나옵니다. 잊고 지냈던 오래된 수학여행의 추억을 어린 학생들의 쪽잠에서 발견합니다. 수면에서 해방과 자유를 체험하는, 안전벨트에 묶인 채 섬을 떠도는 피곤한 영혼들. 어느새 안타까움을 느끼는 소극적인 어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