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곡(哭)

by RNJ
밤과 아침


진통이 시작되었다.


내일은 초음파로만 보던 아이를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 될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떨리는 손을 겨우 부여잡고 서둘러 짐을 챙겨 병원으로 출발했다. 직원에게 안내받은 가족 분만실은 두 사람이 머물기에는 지나치게 넓고 추웠다. 커다란 욕조, 환자용 침대, 암막커튼과 몇 가지 의료장비. 우리는 진통이 더 심해지기 전에 서둘러 전시 준비를 끝마치기로 했다. 미리 준비한 줄과 그림을 산소 공급기가 박힌 하얀 벽에 걸었다. 새끼줄에 고추와 숯을 꼬듯이 아이의 모습과 울음을 상상하며 그림에 함께 엮었다. 아, 물론 갓 태어난 아이는 시력이 나빠 우리가 준비한 그림을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크면 남겨진 사진을 통해 우리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한 전시회. 그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선 수년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탄생의 목전에서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모성 사망률이 극히 낮은, 훌륭한 의료진과 의료기술을 갖춘 나라에 살고 있지만 매년 30~40명의 산모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다고 한다. 신생아의 사망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어떤 경우에는 극히 낮은 확률조차 동전 던지기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무기력함을 인식하고 나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넘치는 힘과 전문성에 자부심을 느끼던 남자라도 출산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커다란 비참함으로 가득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살피게 된다.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 모여 발을 구르는 남자들은 수줍게 태명을 교환한다. 한 시간 차이로 오빠와 여동생으로 깔끔하게 호칭 정리가 되는 관용이 흘러넘치는 장소(오늘 아침에 태어났어요? 그럼 우리 아기가 동생이네). 미숙한 아빠들은 갓 태어난 아기가 혹시나 아프지는 않은지 까치발을 하고 신생아실 곳곳을 살폈다.


탄생을 위해 죽음에 가까워져야만 하는 출산. 아기 엄마의 진통을 바라볼 때 나는 장례식장의 곡소리가 떠올랐다. 진통, 그리고 대화와 실없는 농담. 통증과 함께 찾아오는 아기 덕분에 산모의 입에서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끔씩 의료진이 들어와 아이와 엄마의 상태를 함께 살폈고, 간단한 설명을 끝으로 졸음과 슬픔, 그리고 후회로 가득 찬 어두운 방에 우리를 남겨두고 떠났다.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통은 더욱 거세지고 곡소리는 더욱 빈번해지고 구슬퍼졌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산모의 입은 방향을 가리지 않고 찢어졌지만 이젠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곡소리, 침묵, 그리고 다시 곡소리. 쏟아지는 잠을 쫓는 과정에서 할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장이 떠올랐다. 8살 아이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옆에서 지키며 처음으로 죽음과 생자의 슬픔을 목격했다. 작은 떨림과 천천히 식어가는 육체. 할아버지의 꺼칠한 발톱을 마지막으로 만져봤던 기억이 났다. 누런 발톱은 거칠고 두껍고 독수리 발톱처럼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생전에 모두에게 무뚝뚝하고 무서웠던 할아버지는 집안의 막내 손주인 내가 침대 발치에서 발톱을 만지작거려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죽은 할아버지의 차가운 발을 다시 만지며 죽음으로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3일은 장례식장의 곡(哭) 소리가 멈추면서 끝이 났다. 삼베옷을 입은 상주는 문상객이 반절을 마칠 때까지 곡을 멈추지 않았다. 침묵이 감돌던 빈소에 낯선 얼굴이 찾아오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곡을 시작했다. 하나의 제례가 끝나면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시래깃국이나 육개장을 내어 식사를 대접했다. 손님이 많은 저녁 시간에는 곡소리가 멈출 새가 없었다. 당시에 장례식장 입구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전으로 작동하는 컴퓨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하루 또는 이틀짜리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빈소 한 곳이 비워지면 친구가 한 명 사라졌고, 누군가 죽고 빈소가 채워지면 새로운 친구가 한 명 생겼다.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우리는 신이 나서 장례식장 곳곳을 소개해주곤 했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만의 삶의 순리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 같다. 시작과 끝은 서로의 꼬리를 문채 영구히 돌아가는 하나의 몸뚱이였다.


산모의 마지막 곡소리가 끊기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푹 젖은 아이는 엄마 몸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우렁차게 소리를 내질렀다. 탯줄에는 여전히 맥이 뛰고 있었다. 곡을 끝낸 산모의 표정에는 단 한 점의 고통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린 환희의 장막에 잠시 둘러싸여 있었고 의료진의 바쁜 손놀림 끝에 출산의 마침표가 찍혔다. 우리는 다시 넓은 방에 남겨졌다. 이젠 둘이 아니라 셋이 되었다. 내 생에 가장 길었고 복잡했던 밤이 마침내 끝이 났고 창문으로 따듯한 햇살이 쉼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암막 커튼을 치고 분만실을 다시 밤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식은 미역국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가끔 혈압을 재러 오는 의료진이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전시회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아이를 받아주신 원장님은 스마프톤으로 그림을 찍느라 바빠 보였다.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진통이 잠잠한 사이사이에 그림을 감상했다. 추억의 장소와 초음파 사진, 앞으로 아이의 이름이 될 동백이 담긴 그림을 함께 그렸다. 아이가 태어나며 아빠와 엄마도 함께 태어났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멈추자 새로운 울음이 찾아왔다. 자연은 항상 그러하였듯이 공백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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