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은 까마귀와 수학여행을 온 육지 아이들로 가득했다. 어수선한 기념관을 뒤로하고 동백나무가 심어진 길을 따라 가볍게 산책을 하다 위령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위령탑을 중심으로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찬 까만 비석이 둘러져있었다. 비석 아래에는 아침 일찍 다녀간 이들이 두고 간 국화꽃과 귤, 간단한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까마귀들에겐 오늘이 가장 호사스러운 하루였을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희생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야만 했다. '000의 자' 그리고 '1세'. 4.3 사건은 7년 7개월 동안 섬을 불태웠고, 목적을 잃은 불길은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내며 섬 끝까지 퍼져나갔다. 오늘은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7개월이 된 날이다. 아기는 비에 촉촉이 젖은 비석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영원히 늙지 못할 어떤 친구들을 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