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에서 깨어 몸을 뒤척이던 아기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요즘은 아기의 방문을 열어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다. 유난을 떨지 않아도 환하게 웃어주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순수함이 품고 있던 청량한 냉기를 들이마신 것 같아 숨이 멎는듯한 기분이 든다. 아기에게서 순수를 느낄 때, 불순한 우리들의 세상이 떠올라 조금은 슬퍼진다.
혼란스러운 시대는 인간을 탁하게 만들고, 순수한 금속은 불순한 합금을 이겨낼 수 없다. 무른 것은 언제나 가장 먼저 찢어지고 잊혀졌다. 나 또한 닥치는 대로 주워 삼키고 세상과 강하게 부딪힐수록 삶이 더욱 내밀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잔뜩 마모가 되고 나서야 결코 강직함이 아니었던, 탄성이 사라진 무도한 경직성에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훌쩍 자란 아이가 나의 방문을 두드릴 때, 나는 환히 웃어줄 수 있을까? 왜 자꾸 면죄부로 삼을 어떤 실천을 고민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