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따듯해졌다. 아기 엄마가 기절한 동안 아기띠를 챙겨 산책을 나왔다. 아기의 다음 식사까지 약 1시간, 오랜만에 부자간의 우애를 돈독히 다져보기로 하였다. 이른 시간에 방문한 마트에는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한 봉지에 15,000원이 넘는 사과를 보며 입맛만 다시다가 빈손으로 마트를 나왔다.
수도권에는 대형서점은 많았지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의자 하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집 근처에 위치한 2층짜리 동네 서점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를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프랑스 육아법을 찬양하는 엄마가 쓴 책을 읽는데 아기가 책장을 휙 넘겨버렸다. 지루했던 모양이다. 한 손님이 아기의 나이를 물었고 나는 0살이라고 답했다. 잠깐 잡담을 나눴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격표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4층 베란다에서 손주와 함께 햇빛을 쬐고 있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손주의 작은 손을 잡고 서울을 구경시켜 주던. 외할아버지는 발씨름을 잘하는 노하우, 서점에서 여유를 발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존경과 사랑이 비슷하게 이어졌던, 그리움 마저 잊힌 그런 관계가 있었다.
202410대 키워드가 '요즘 남편, 없던 아빠.'라고 한다. 무엇이 없었고, 앞으로는 무엇이 다를까? 확실한 것은 MZ 아빠는 가진 것이 없고, 이전에도 요즘의 남편들이 여럿 있었다. 아침 산책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아기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부지런히 집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