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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May 02. 2024

 아버지는 다리가 아팠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수술이 잡혔고, 의사는 허벅지의 살을 째고 뼈를 깎은 다음 인공 관절을 아빠의 몸에 집어넣었다. 수술이 막 끝났을 때, 아빠는 한 뼘은 넘어 보이는 수술 자국을 보여주며 밤이 되면 수술 자리에서 큰 지네가 뚫고 나온다는 뻥으로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덕분에 한숨도 못 잤다). 아저씨 냄새가 풀풀 풍기던 6인실 달력에는 "000 환자 손가락 뽑는 날"같은 8살 아이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포를 느낄법한 스케줄들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한 손에 붕대를 칭칭 감았던, 손가락 뽑는 날의 주인공이었던 아저씨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나를 살갑게 챙겨주었다.


 아버지는 육교를 싫어했다. 당시에만 해도 육교에 엘리베이터는커녕 경사로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리가 불편해진 아빠는 육교를 지날 때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 내게 설명하였다. 아버지는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 계획가였고 자동차 중심의 세상을 싫어했다. 아버지는 가끔 인상을 찌푸렸고 어떤 날은 내 팔을 붙잡고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못 하곤 하였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을 때 아빠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지만 밤만 되면 침대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 표정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여태까지 아빠와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다니는 모습은 단란한 행복을 보여주는 클리셰라 생각했다. 아니 웬걸, 유모차를 끌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부모가 되어서 깨닫고 말았다. 식당의 경사로는 그 흔한 한라산 노루보다 보기 힘들었고 횡단보도와 인도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좁고 기울어진 인도를 지날 때마다 질주하는 경륜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겉옷은 서늘한 땀으로 푹 젖어버렸다. 횡단보도에 진입할 때 멈추는 차는 테슬라 밖에 없었다. 요즘은 자율주행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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