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루 바닥에 앉아 복숭아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9월 중순이면 복숭아 철이 끝나갈 시기인데 그럼에도 입안 가득하게 단맛이 돌았고, 아이는 어린 새처럼 입을 아- 하고 벌렸다가 우물거리기를 반복했다.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별다른 말 없이 복숭아를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엄마 깨워서 같이 먹을까?"
도리도리
"우리끼리 먹을까?"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그리곤 엄마가 곤히 잠들어있는 방문을 슬쩍 바라본다.
"엄마 미아내~"
우리는 소리를 죽인 채 복숭아를 오물오물 씹었다. 아이는 그래도 불안했던지 방문을 닫으러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곤 완전히 방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곤 한마디 던지셨다.
"안농!"
복숭아가 달콤했던,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여름의 무더위가 지독스러웠다만 이때에만 맛볼 수 있는 재미와 향이 있었다. 내년에는 세 돌 아이와 복숭아를 먹을 것이고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겠지만, 아이는 쑥쑥 자라 있을 것이고 복숭아와 더위의 맛도 조금 달리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만들 삶의 굴곡을 보다 또렷이 기억하기 위해서.
40도까지 치솟았던 최악의 더위와 80%를 우습게 뛰어넘는 살인적인 습도. 진도 8.7 지진이 유발한 쓰나미 경보와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한 지하철 폐쇄까지. 일생에 한두 번 있을법한 사건들이 일본에서의 10일 동안에 촘촘히 발생했다. 두 돌을 앞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호기롭게 배낭여행을 시작한 우리 가족은 2배 3배로 독한 일본의 매운맛을 보고 말았다.
일본의 더위보다 더욱 화끈하게 싸웠고 시시하게 마음을 풀었던, 쉽지 않았던 가족 여행이 몹시도 그립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소중하다 느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기 티를 훌훌 벗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자니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잘 다녀왔다, 아직까진 여름의 일본 여행이 좋은 선택이었다 여기고 있다.
"유모차와 함께하는 8월의 일본 배낭여행"
위 문장에 쓰인 각각의 단어가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만, 부정적인 어감을 풍기는 단어는 없다 해도 좋을 것이다. 여행은 뜨거운 이름이며, 유모차는 단란함의 클리세이며, 일본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관광 대국이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몽땅 합치게 되면 어딘가 섬찟한, 가슴에 바위가 떨어진 듯한 막막함이 느껴지는 이 글의 제목이 만들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족'이라는 포근한 단어가 '여행'이라는 뜨거운 이름을 만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뜨뜻했던 어감은 순식간에 팍- 하고 식어버린다.
두 살 아이가 새로운 팀원으로 합류한 이번 가족 여행의 목적지는 오랜 고민 끝에 일본이 되었다. 비행시간이 짧고, 치안이 좋으며, 음식의 맛과 형태에 큰 차이가 없고, 물가가 그다지 높지 않은 나라. 특히 오사카와 교토는 일본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여행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는 도시다. 대부분의 관광지에 한국어 표지판과 브로셔가 준비되어 있고, 일본에는 영어보다 한국어에 능숙한 현지인들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당연히 한국인 관광객이 많을 수밖에. 특히 오사카는 어딜 가나 "정말?" "진짜?" "몰라?" "파파고가 뭐래?"같은 한국인 고유의 추임새를 들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악명이 자자한 일본의 '더위'가 1순위 걱정이었다. 40도에 육박하는 숨 막히는 더위, 이건 아이는 물론이고 건장한 성인도 버티기 힘든 날씨임이 분명했다. 우리가 다녀올 오사카와 교토는 우리나라에서도 무덥기로 유명한 제주도와 동일 위도에 자리 잡고 있다. 여름에 바다 수영을 제외한 야외활동을 하지 않는 우리가, 열섬으로 가득한 도시 관광을 무탈하게 할 수 있을까? 매년 관측 이래 최악의 더위라는 말과 함께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섬찟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내 생애 가장 시원할 지금, 한여름의 일본을 얼른 다녀와야겠다고.
2순위 고민은 바로 '유모차'. 저상 버스가 드문 제주도에선 버스에 유모차를 버스에 실는 행위는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임신 6개월인 아내가 정차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토박이 버스 기사가 제주 방언을 섞어가며 냅다 소리를 내지른 적도 있었다(제주도에 살며 들은 최악의 목소리였다). 거기에 더해 나는 운전이 거칠기로 유명한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천안 출신인 아내는 자기 동네의 버스가 더욱 난폭할 것이라 200% 자신했다(천안에서 버스를 세우려면 기사님을 향해 간절한 표정을 지은 채 열심히 손과 엉덩이?를 흔들어야 한다나.... ). 우리의 기억 속 버스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노약자를 배려하는 대중교통이 아니었다.
비록 지난 수년간의 버스 이용 경험이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일본은 다를 것이라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다. 믿음의 근거는 10년 전, 일본에서 버스를 처음 탔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버스기사님들은 마이크를 찬 채로 부드럽게 운전하고 인사하며 (승객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하차하는 모든 승객과 '아리가토 고자이마시타'를 주고받았다. 상대적으로 운전이 거칠다고 알려진 교토의 버스도 부산과 천안에서 나고 자란 우리 부부의 입장에선 5성급 호텔의 리무진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지하철은 항상 유모차 전용 칸이 있었고, 버스에선 항상 현지인으로부터 자리를 양보받았다.
여행을 전 날까지 경비와 동선을 검토하며 쌓인 걱정들. 마침내 우려와 긴장에 설렘이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여러 사철이 난립하는 일본의 지하철은 너무나 복잡해 보였고 유니버설 티겟은 종류가 스무 가지가 넘었으며, 교토는 생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낯선 도시였다. 대 여섯 번의 자체 검토 끝에 여행 계획서(진짜 진짜 최종본.hwp)이 완성되었다. 슈퍼 J의 노력이 무색하게 모든 여정은 역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불가피한 감정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고 말았다.
불필요했던 말다툼은 우리가 참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아이를 생각하고 돌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다시금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부디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길!).
이번에 남기는 글은 아주 사적인 기록이다. 그럼에도 오사카와 교토에 발자국을 실컷 찍고 오고자 하는 가족여행자에게 어느 정도 유용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캐리어 하나 없이 배낭을 하나씩 둘러매고 유모차를 질질 끌고 들고 오사카와 교토를 발바닥 불나게 돌아다녔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발버둥을 치기라도 하면 13kg짜리 배낭이 하나 더 늘어났고 설상가상으로 말 안 듣는 똥똥한 배낭에는 뜨끈뜨끈한 온열매트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었다. 어떤 날은 약 15km, 약 20,000보를 걸었고 '휴식'이라고 생각했던 날도 확인해 보니 9km를 걸어 다녔다. 일본의 부엌이라 불리우는 오사카를 다녀왔음에도 10일 동안 3kg이나 쭉- 빠지고 말았다.
유모차를 끌고 목적지로 가는 길에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감은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곳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끝없는 계단, 무시무시한 턱과 경사로, 숨 막히는 인파, 점멸하는 신호등. 부모가 됨과 동시에 우린 교통약자가 되었고 이러한 이유에서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경험이 가슴 뛰는 설렘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 글은 그런 불확실성에 도전했던, 합리적인 편견에 거스르고 때론 굴복하며 버텨낸 찰나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일본에서 13kg 아이를 들고 다니며 얻은 두 가지 깨달음. 호모 사피엔스가 왜 정착 생활을 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안락한 집과 고향을 뒤로한 채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성이 풀리는 우리의 모순되고 기이한 습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