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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공항과 쓰나미 주의보

by RNJ


아이 방의 창문에선 한라산을 배경으로 제주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가 5분 내지 10분에 한 번 꼴로 보인다. 공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살고 있지만 비행기가 오르내리며 만드는 소음이 상당한 편이라 환기를 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창문을 닫아두는 편이다. 부지 매입과 환경 파괴, 그리고 이어지는 보상 문제. 이러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타개하고자 했던 간사이 지방의 관문, 간사이 국제공항은 오사카만의 인공섬에 건설되었다. 지금까지도 바다 위의 공항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공항이 되었지만, 요즘에는 베니스와 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이슈로 더 유명해지고 말았다.


오사카 최고층 건물인 하루카스 전망대에 올라가면 산 하나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오사카 대도심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오사카 사람들이 5저산, 8저산이라고 부르는 산들은 대체로 제주의 동네 오름만큼 완만하고 높이가 낮다). 인구 약 900만 명에 달하는 과밀화된 도시는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해외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이러한 이유로 불빛 없이 잠들어 있는 땅이라곤 영업이 끝난 텐노지 동물원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인간이라는 동물은 쉬이 잠들지 않는다.


오사카의 이웃 도시인 교토와 나라, 고베 지역을 방문하는 공항 이용객까지 고려를 한다면 공항을 건설하기에 합당한 넓은 부지를 확보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2025 오사카 엑스포 또한 쓰레기 매립장을 목적으로 70년대에 건설된 인공섬 유메시마에서 개최되었다. 에도 시대부터 인공섬을 만들어온 나라답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오사카만에는 다양한 목적으로 건설된 여러 인공섬이 보였다.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는 점점 땅이 아닌 수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유모차 door to door 서비스는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그리고 착륙 직후에 바로 유모차를 사용할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하는 경우 추천.



정든 화산섬을 떠나 바다를 건넌 우리 가족은 간사이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바다 위에 건설된 탓에 오사카 중심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다. 전철로도 시내에 진입할 수 있지만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이라면 자그마치 '2시간'이라는 엄청난 비행시간을 버텨낸 기특한 아이를 위해 대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은 하루카 특급 열차와 라피트.


제주도에서 태어나 기차를 장난감으로만 만났던 아이는 생애처음으로 창문 너머로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구경했다. 라피트에는 우리나라 기차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타원형 창문이 있는지라 우리가 낯선 타국에 도착했음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절로 흥이 났지만 이와 동시에 긴장 아래에 억눌려있었던 피로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 라피트 열차는 도톤보리 남쪽에 위치한 난카이 난바역이 종점이다. 이용객이 많지는 않으나 차내 캐리어 보관장소는 항상 꽉 차는 편. 짐이 많다면 1~2호차를 이용하거나 특실을 이용하는 편이 좋으며 공항에서 종점까지의 소요시간은 약 40분. (인터넷 사전 예매가 가장 저렴하다)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시간대에 도착한 오사카 시내는 예상대로 더웠으나 제주처럼 습하지는 않았다. 도저히 식당까지 갈 에너지가 남지 않아 우리는 괴상한 홍보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슈퍼 타마데>에 들렸다. 오사카에만 있는 저가형 슈퍼마켓인데 24시간 운영이 원칙인지라 늦은 허기를 달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저렴한 물건을 파는 24시간 매장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으며 생필품 물가는 한국 대비 60~70% 수준. 시간이 있다면 <라이프>라는 마트 체인을 검색해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적당한 가격에 충실히 부합하는 다양한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었다. <라이프>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인지라 아기 동반 여행의 필수품인 기저귀와 물티슈도 판매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지친 몸과 아기를 이끌고 일본의 가정식 패스트푸드점이라 할 수 있는 <스키야>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해가 뜨자 지면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음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날씨였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때 테이블에 올려놓은 폰에서 쉼 없이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외교부였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 인근 규모 8.7 지진 발생으로 인한
태평얀 연안 지역 쓰나미 경보 발령


일본에서의 첫째 날 아침, 우리는 'TSUNAMI'와 'EVACUATE'를 제외하곤 한 마디도 읽어낼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긴급 뉴스 앞에서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은 1900년대 이후에 발생한, 강도로 따지면 Top5에 들어가는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시작되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던 수마트라섬,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리가 도착했던 오사카만의 간사이 공항과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아름다운 해안가는 쓰나미 주의보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긴급 뉴스는 사람으로 가득한 기차역과 어느 어촌 마을에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창 밖을 내다보았지만 다행히 도시는 평온했다. 우리 가족에겐 쓰나미 경보를 알리는 긴급 뉴스가 불의 고리 위에 세워진 지진의 나라, 일본에 도착했음을 실감한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나와 아내 사이에서 아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숙소 내부를 두다다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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