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빠의 로망

교세라돔

by R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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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교세라돔

난생처음 보는 남자가 아빠와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우리에게 불쑥 내밀었고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서며 '뉴스에서만 보던 암표상을 드디어 만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남자는 반으로 접힌 A4 2장을 내밀었다. 프린트로 출력된 온라인 예매 티켓이었다.


어떠한 사정인지 영영 알 수 없겠지만 사직구장으로 밀려드는 인파를 홀로 거스르던 한 남자는 우리 부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티켓을 넘겼다. 감사하게도 돈이 조금 굳은 덕분에 김밥 두 줄과 시장 통닭 두 마리, 신문지 한 장을 구매했고 사직 야구장 외야 최상단에 자리를 잡았다.


상대는 야구명가 삼성 라이온즈. 롯데만 만나면 펄펄 날았던 양준혁 선수가 홈런과 2루타를 터뜨리며 선발투수를 일찍이 퇴근시켰고 승부의 추는 삼성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결과는 반전 없이 롯데의 완패. 롯데의 참패와 양준혁 선수의 맹활약을 제외하곤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으나 사직구장에 울려 퍼지던 우렁찬 함성 소리, 경기장 바닥에서 몸뚱어리로 전해지던 진동이 만들어낸 벅찬 심장의 울림은 지금 이 순간까지 사그라들지 않 있다.



이후에도 주말에 시간이 생기면 아빠와 단 둘이 야구를 보러 다녔다. 가끔 얼큰하게 취해 기분이 좋아진 아빠가 맥주 한 모금을 하사하기도 했고(사실 세 모금 정도 더 마셨다), 홈런이 터지면 소주와 물아일체가 된 낯선 아저씨들과 얼싸안고 '부산갈매기'를 열창하곤 했다. 그리고 절대로 잊지 못할 2008년 8월 31일, 롯데가 창단이래 최초로 10연승을 노리던 경기에서 또다시 삼성을 만나버렸고 롯데 특유의 화끈한 실책을 연발하며 에이스 손민한 선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클리닝 타임에 영화 <해운대>를 촬영한다는 전광판 안내가 나왔다.


"영화 이름을 저래 대충 지어가 성공하겠나? 와, 자갈치로도 하나 맹글지!" "역사적인 날에 초치구로 저런 걸 찍노!"라고 외치던 분노한 관객들의 노기는 8회 말, 롯데가 가르시아의 결정적인 안타로 멋진 역전승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해운대, 니는 대성할끼다!'는 진심 어린 축사로 바뀌었다. 2008년 가을, 롯데는 10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했고 영화 <해운대>는 2009년,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다.


언젠가 아빠와 롯데의 한국 시리즈 경기를 함께 보고자 약속했었다. 그러다 롯데가 6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2013년,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고군분투하던 아버지의 심장이 잠시 멈춰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10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회복을 기약할 수 없는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가끔 야자를 빼고 아빠의 병원에 들렀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빠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말없이 롯데의 야구 중계를 들었다.


6년 뒤, 롯데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는커녕 최하위인 10위로 완전히 추락해 버렸고, 그 해에 아버지의 길고 긴 투병생활도 끝이 나버렸다. 2019년, 부산 사람들은 우울했고 롯데 팬인 아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로 5년이 넘도록 야구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정든 부산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맥주를 마시며 아들과 야구를 보고자 했던 아버지의 로망은 내가 아버지가 되면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이는 제주도 산부인과에서 태어나버렸고 서울보다 큰 화산섬에는 경기를 볼 수 있는 야구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가족여행에 야구장을 슬쩍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이대호 선수가 뛰었던 오릭스 버펄로스의 홈구장이 오사카에 있다는 글을 읽고 환호성을 질렀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9층짜리 돔. 나의 오래된 로망은 존재조차 몰랐고 응원해 본 적도 없는 오릭스 버펄로스의 홈구장인 교세라 돔에서 이루어졌다. 자그마치 한 잔에 7,000원이 넘는 김 빠진 맥주와 함께.


* 오릭스 버펄로스 티켓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후 구매 가능. 회원가입을 위해서는 현지 숙소의 주소와 전화번호, 가나로 된 대표자 1인의 이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이돌의 콘서트 장소로 더욱 유명한 교세라돔의 독특한 외관은 로이드 빌딩과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를 흉내 낸 아류작처럼 느껴졌으며, 내부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우주선 '죽음의 별' 탑승장 같았다. 야구경기뿐만이 아니라 콘서트 개최가 가능하도록 슈퍼링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으나 부품 조달의 문제가 생겨 지금은 천장이 항상 고정된 상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돔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의 2배, 가장 큰 야구장인 잠실구장보다 1.5배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기에 한 번에 좌석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자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선발투수의 1구가 포수의 미트에 내리 꽂혔고, 우리는 1회 말이 되어서야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 교세라돔 복도에는 유모차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지정되어 있다. 경기장 내부에는 유모차 진입이 불가.



야구장 끝까지 뻗어나가는 우렁찬 트럼펫 소리, 일본의 응원가는 트럼펫으로 시작하여 트럼펫으로 끝난다. 빵빵한 앰프와 치어리더의 칼 같은 퍼포먼스로 응원을 이끄는 한국과는 달리, 외야 응원석에서 들려오는 트럼펫과 큰북, 쌩목으로 이루어진 삼중주는 그야말로 올드스쿨이었다. 오릭스 버펄로스와 세이부 라이온스의 응원단은 우리가 8회 말에 경기장을 나설 때까지 서포터스들로부터 열띤 응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는 처음 듣는 음악에 맞춰 요상한 춤을 췄고 나와 와이프는 물론이고 이웃한 관객들마저 깔깔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처음 듣는 일본어 응원가를 힘차게 따라 불렀다. 잠시나마 버펄로스 4번 타자의 열혈팬이 되기도 했고 좌익수의 몸을 던지는 수비와 키스톤 콤비가 만들어낸 완벽한 병살 플레이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는 쌀과자를 먹고 '쿠우' 주스를 마시며 야구장 식문화에 완벽하게 적응했고, 좀이 쑤시면 돔구장의 복도에서 쫄쫄쫄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정이 있는지라 8회 말에 야구장에서 나왔고 오릭스는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아이는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즐거움에 지쳐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주중 내내 이어진 야근과 회식 폭탄으로 폭삭 지쳐버린 주말에도 아빠는 시간을 내어 나와 야구를 보러 다녔다. 야구장에 가기 전 잠시 들린 불 꺼진 아버지의 사무실 쓰레기통에는 항상 신라면 작은 컵과 구운 계란 한 팩이 들어있었다. 야구장 앞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산 날에도 아버지는 맥주만 조금씩 홀짝이셨다. 당시에는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었으니깐.


사랑하는 장소에서 나를 닮은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는 모습, 바다 건너 일본의 교세라돔에서 아버지가 왜 주말마다 야구장에 가고 싶어 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사랑했을 그 장면을 나 또한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로망은 이제 나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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