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지 위에 조성된 부산 민락수변공원에는 '매미'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부산 사람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태풍 매미가 만들어낸 거센 파도는 5톤짜리 바위를 수변공원 계단에 올려놓았고 수영구청에선 태풍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자는 취지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전시하기로 결정하였다. 태풍이 남긴 상흔으로 가득한 장소는 젊은이들이 돗자리를 깔고 회와 술을 즐기는 '핫'플레이스로 변모했으나, 한 달에 범죄 신고만 2,000건이 넘게 접수되고 수영구 전체 쓰레기의 절반을 만들어내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2022년, 태풍 힌남노는 매미바위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고 90개에 가까운 바위를 수변공원에 새롭게 올려놓았다. 크게 피해를 입은 공원은 한 동안 폐쇄되었고, 다음 해에는 수변공원의 음주가 금지되었으며 조용히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매미 바위와 신세대의 핫플레이스는 막아설 수 없는 거대한 바람으로 인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파도가 바다를 떠나는 즉시 힘을 잃어버리고 말지만, 어떤 파도는 무거운 바위를 옮기고 방파제를 넘어 일상의 풍경을 180도 바꿔 놓곤 한다. 80년대 홍콩의 항류는 다방의 성냥개비를 동나게 만들었고, 90년대 일류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던 국민의 정부는 '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는 일본의 문화가 한국 문화를 잠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작된 한류의 물결은 일본과 대만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중에서도 매체를 통해만 접할 수 있었던 타국의 한류 열풍은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 그저 상상으로 가늠할 뿐이었는데, 오늘로부터 16년 전인 2009년에 일본에서 한류의 열풍을 처음으로 생생히 체감할 수 있었다. 생애 첫 일본여행의 마지막 날을 TV가 있는 후쿠오카의 한 호텔에서 보내게 되었고, 놀랍게도 TV를 켜자마자 나온 사람은 이치로도 코난도 스모 선수도 아니었다.
바로 한복을 입은 이영애 씨였다.
n번째 파도, 한류
2009년은 <대장금>이 종영한 지 5년이나 흐른 시점이었고, 시청률 30%를 기록한 <불멸의 이순신>이나 <궁>과 같은 퓨전 사극이 인기를 끌면서 <대장금>은 한국에서도 서서히 잊히던 왕년의 드라마였다. <대장금>은 '궁정여관(宮廷女官)·장금의 맹세'라는 무게감 넘치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데뷔하였는데, <겨울연가>가 사로잡지 못한 일본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재방영까지 결정되었다고.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던 13살의 나는 일본의 한 호텔 침대에서 한류열풍의 위대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욘사마와 독도.
중간지대가 없는 일본의 인상은 바로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배용준 씨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연예가 중계>에 나오고 초등학교 음악시간엔 <독도는 우리 땅>을 4절까지 외우는 시험을 보곤 했다. 방송사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쏟아냈고, 1987년 이후 잠잠했던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재개하며 동북아시아에는 다시 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이즈미가 후계자로 지명한 자민당의 새총재인 아베 신조는 2019년 한일무역분쟁을 알리는 효시를 동해 바다를 향해 쏘아 올렸다. 여객선의 목욕탕에서 만난 일본인 할아버지는 김치를 좋아했었고, 오사카의 한 교회에서 만난 일본인 집사님은 고개를 숙여 식민지 문제에 대해 사죄했었다. 정치 산업과 편협한 이데올로기가 얽힌 지리한 다툼 속에서 나는 양비론자로 자라게 되었다.
냉장실과 냉동실을 오가던 한일관계는 영화사 <지브리>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영화와 Chat-gpt로 제작한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의 유행, <원피스>, <짱구는 못 말려>, <도라에몽>, <포켓몬스터>와 같은 만화의 세계적 열풍과 코로나 시절에 트렌드로 자리 잡은 오마카세, 그리고 엔화 약세로 인한 일본 여행의 증가로 다소 뜨뜨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다. 특히 2023년은 새로운 파도인 <스즈메의 문단속>과 오래된 파도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박스오피스 TOP10에 오르며 잠잠했던 일류가 되살아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류의 힘을 처음 체감했던 2009년으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2025년의 일본 사람들은 무엇을 한류라 여기고 있을까? 막연히 품고 있던 호기심은 유난히도 힘들었던 하루,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다다미방에 널브러져 본 TV 앞에서 해소되었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교토의 숙소에선 채널이 10개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한 채널에서 김고은 씨가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바로 드라마 <도깨비>였다. 일본에서 만난 반가운 김고은 씨가 유창한 일본어를 내뱉는 바람에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다만(일본은 우리와 달리 더빙을 선호한다) 8년 전의 드라마가 바다 건너 일본의 황금시간대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한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정통 사극 <대장금>의 이영애 씨가 사극과 현대극이 어우러진 <도깨비>의 김고은 씨에게 바통을 넘겨준 것이다.
n번째 파도, 일류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던 어린 시절의 게을렀던 나는 <포켓몬스터> 방영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초 단위로 지켰다. 251종이나 되는 포켓몬의 이름과 기술을 몽땅 외우고 있었고, 주인공인 한지우처럼 볼캡 모자를 거꾸로 쓰는 것이 멋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기요미즈데라에 가기 위하여 탄 버스에선 백발의 일본 노인이 스마트폰으로 '포켓몬 go'를 플레이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앉은 백인 아이도 검지 손가락으로 몬스터볼을 열심히 돌려대고 있었다. 국가와 나이의 장벽을 초월하는 <포켓몬스터>는 지금까지 150조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고, 우리 아이의 침대에도 포켓몬 '라프라스'와 '누오'인형이 나란히 누워있고 며칠 전엔 포켓몬 원더랜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여미지 식물원에 다녀왔다.
2살 아이는 언어의 장벽이랄 게 없는지라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배를 뚱뚱하게 불린 아이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명탕점 코난>에 빠져들었고, 아침에는 <시나푸슈>를 보며 일본식-영어 발음을 익혔다. 0~2세 영유아를 타깃으로 만든 TV 프로그램인 <시나푸슈>는 아침 7시 30분에 방영하는데 두 아이의 엄마인 이이다 카나코가 육아지원센터를 방문하는 엄마들의 고민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문가의 검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들을 위하여 모교인 도쿄대에 프로그램의 검수를 요청하였고, 뇌의 연결체인 시냅스에 딴 '시나'와 양육자의 어깨 힘이 빠지는 소리인 '푸슈'를 합성한 <시나푸슈>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어린이는 물론이고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 아이들을 위하여 대사를 최대한 제거하고 음악과 노래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으며, 부모와 아이들이 극장을 함께 경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영화화까지 추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와 영화관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긴 했다.
영어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열정을 고려하여 영어 노래가 포함되어 있으며, 토끼의 습성, 일본 인디 밴드의 신곡, 심지어 참치 회덮밥을 만드는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한 인터뷰에서 "육아는 즐겁다!"라고 말한 이이다 카나코 총괄 프로듀서는 "육아의 즐거움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지금도 SNS를 활용하여 엄마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으며, 육아의 책임이 막중한 핵가족 시대의 양육자들에게 아이의 영상 시청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흥겨운 멜로디에 맞춰 30분 정도 신나게 춤을 춘 아이는 잠이 완전히 깨버렸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세수를 대강 마치고 카운터에 넣어놓은 유모차를 펼친 다음 아이와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시나푸슈> 덕분에 일본에 머물던 동안에는 잠시나마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아동기본법의 제정과 아동청을 창설하여 저출산의 늪을 돌파하고 있는 일본의 전방위적 노력에는 일부 한계가 존재하나,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아동과 양육자의 웰빙을 이루고자 하는 새로운 흐름에 우리도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 아이와 유튜브로 <시나푸슈>를 본다. 여행 이전처럼 게을러진 덕에 점심이나 저녁 즈음에.
n번째 파도, 쓰나미
일본의 만화가 다쓰키 료는 1999년에 출간된 <내가 본 미래>에 2011년 3월에 끔찍한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2011년 3월 11일 강도 9.1의 유례없는 대지진이 발생했고, 약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전력이 차단되어 냉각되지 못한 후쿠시마의 원자로가 연달아 폭발하고 말았다. 작가는 2025년 7월에 다시 한번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는데, 대만과 홍콩을 비롯한 이웃 나라에선 비행기 취소표가 무더기로 발생했고 대한민국 주요 언론사도 이러한 내용을 수차례 보도하였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아는 작가님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지진 예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이야 지진이 숱하게 일어나는 나라고 지진은 몇 달 전에 예측할 수 있는 성격의 자연재해가 아니었기에, '절대' '대'지진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을 했었다. 발생한다 하더라도 우연일 뿐이라고. 우리가 일본으로 출발한 7월 29일까지 작은 지진은 몇 차례 있었으나 다쓰키 료가 예언한 대-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틀 뒤면 8월이니 TV와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신은 소리소문도 없이 잊힐 것임이 분명했다.
7월 30일 11시, 신세카이 시장 근처의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나와 아내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카톡이겠거니 생각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하려는 찰나, 또 동시에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외교부'. 입국한 지 하루가 지났는데 지금에서야 연락이 오다니! 그런데 또, 또, 또다시 스마트폰이 울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잠금을 해제하고 문자함을 열었다.
쓰나미 경보였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 인근에서 규모 8.7의 강진이 발생했으며, 일본은 3년 만에 전 해상에 쓰나미 경보를 공표하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발생한 최대 강도의 지진이 바로 우리의 여행의 두 번째 날에 터져버린 것이다. 그것도 2살 배기 아이와 함께한 첫 해외여행에서 말이다! TV를 틀어보니 경보를 듣고 차로 피난을 가던 한 시민이 바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유명을 달리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흘러나왔고, 진원지에 근접한 홋카이도 주민들은 생업을 내버려 둔 채 아이와 짐을 둘러메고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추가 사망자 없이 경보가 해제되었다.
가쓰시가 호쿠시아가 그린 <가나가와 앞바다의 거대한 파도> 아래에는 어선과 바닥에 납작 엎드린 선원들이 그려져 있다. 파도가 요동치는 그림에서 미동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존재는 일본의 상징과도 같은 후지산이다. 그러나 잠잠해 보이는 후지산 또한 한때 땅 속의 화마를 거칠게 뿜어내던 하나의 파도였을 뿐. 세상에 흐르지 않으며 부서지지 않는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마주했던 수많은 파도조차 우주의 시간 속에선 특별할 것이 없는 N번째 파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한 올림픽 해설위원의 말처럼 필멸하는 존재가 찰나의 순간 뿜어내는 물보라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어 아름다운 현재가 담겨있다. 인간의 삶이란 멀찍이서 파도를 바라보며 이를 따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파도 속으로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도는 반드시 부서지고 곧장 되살아나 우리를 또다시 해변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위험한 호기심을 떨쳐내지 못한 채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