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작 Jun 18. 2023

ep 68. 화가 엄마 김지희 작가

최근 나를 혹하게 한 드라마가 있었다.

닥터 차정숙.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엄정화가 주연이었던 이 드라마.

내용은 의대 졸업 후 의사 국가고시를 패스했지만,

결혼과 함께 20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다가,

우연한 사건을 겪으면서 레지던트 1년 차로 다시 복귀.

우여곡절을 반복했지만, 다시 멋진 의사로 성장한다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기센 언니 엄정화가 무언가 내려놓은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가 참 좋았다.

경단녀의 직업이 드라마스럽긴 했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인기를 얻었다.

TV 자체 시청률로는 최고 시청률 18.5%를 찍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최근 업계에서 이 정도면 엄청난 히트작이다.

나 또한 첫 화부터 정주행 한 건 아니었지만,

OTT 서비스로 순식간에 볼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그리고 이런 멋진 경단녀의 부활은 가까이에서도 일어났다.


지난달  중학생인 우리 아들의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이런 이벤트가 없으면 거의 학교엔 갈 일 없는

중학교 학부모이기에

오랜만에 엄마들도 볼 겸 참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공개 수업 후 친한 엄마들과 조촐한 모임을 했다.  

친한 학부모들 사이에서 ' 미대 언니'라고 칭하던 아들 친구 엄마가 

오랜만에 미술 개인전을 연다며 초대권을 내밀었다.

'미대 언니'라고 부르던 이 엄마는 우리 아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축구팀을 통해 인연을 맺고,

현재 중학생이 된 지금도 농구팀으로 함께 하고 있다.

활달한 성격에 유머스러운 말발과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오랫동안 아들의 학부모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그녀가 손에 쥐어 준 전시회 초대권엔

내 눈을 사로잡은 그녀의 작품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그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건 알았는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던 찰나,

일단 멋진 색감으로 표현된 멋진 그림에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작품을 그린 거야? ‘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갑자기 쏟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김지희 작가 13년 만에 개인전  >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미대로는 최고라 하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로망의 학교인

홍익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사뿐 아니라 석사. 박사 과정까지 하다

박사를 다 끝마치지 못하고

출산과 육아로 작품 활동을 그만두어야 했다고 한다.

그 공백기 동안 개인 화실 및 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을

비정기적으로 가르치긴 했지만,

오롯이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그런 그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13년 만에 공백을 깨고 다시 시작하는 전시로

모두 새로 작업한 그림들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낮에는 아이들을 케어하며 가정에 시간을 쓰고,

전시 오픈까지 약 두 달간 늦은 새벽까지  작업을 하며,

작업에 쓰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일과 육아를 넘나들며

생활했다.

                                      < 김지희 작가 데스커 전시회 장에서  >


이번 주말 나도 그녀의 전시장을 찾았다.

그녀의 전시는 홍대 근처 데스커 디자인 스토어에

6월 30일까지 진행한다.

젊음의 거리 홍대 근처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그녀의 멋진 그림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개인전 이름은 < Unknown Scene>이다.

그녀가 < Unknown Scene>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히 마주한 고요한 풍경 때문이라고 한다.

잠시 정차한 밀양역의 인상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강렬했고,

밀양의 풍경은 산과 들이 펼쳐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그 익숙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유난히 고요한 적막감에서 느껴지는 불안한 심리를 

작품 안에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특정할 수 없으며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낯설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무언가 보고 있고, 존재하는 멋진 풍경이지만,

불확실한 이면에 영감을 얻은 것 같았다.

                                                  < 김지희 작가 렌티큘러 작품  >


그녀의 그림들은 아크릴화다.

평면적인 느낌인 것 도 있는데,

입체적인 느낌의 그림도 눈길이 갔다.

물어보니, 렌티큘러라 불리는 기법이라고 했다.  

쉽게 설명하면, 홀로그램 같은 효과가 나는 작품들이다.

그녀의 작품은 풍경들이 주를 이루는데,

근경부터 원경까지 차곡차곡 쌓이다가

근경과 원경이 뒤섞이기도 하는데,

그러한 중첩된 층을 투명한 아크릴판에 하나씩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 김지희 작가 아크릴레이어 작품 >


평면 회화에서 느낄 수 없는 물리적 공간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 김지희 작가 벽화 그림 >


전시장 한켠 두 벽면을 사용한 벽화그림은

엄청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은 짐작이 들만큼

엄청난 공력이 들어갔을 것 같았다.

벽화는 그녀의 최고의 재능이기도 했다.

사실 이번 전시를 하게 된 것도,

2006년도에 대학원 졸업하고 아주 어릴 때 했던

전시였는데, 벽화가 모티브였던 당시 작품 포트폴리오가

이번 공모에 반영되어 이번에 이렇게 벽화도 하게

된 거라고 했다.

그리고 사소한 우연은 그녀에게 기회를 줬다.

이렇게 13년의 공백을 깨고 개인전을 할 수 있게 된 기회말이다.

작년 말 올해 초 학교선배의 제안으로 갤러리 카페에서 조그맣게 소품 전을 했다.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한 콘셉트로 그린 그림들을 발전시켜 전시했고,

그걸 가지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올해 초부터 여기저기 나이 제한이 없는 공모를 냈고

운 좋게 공모에 몇 군데 당선됐다.

 중 하나가 지금 하게 된  

데스커 개인전 전시가 됐다고 했다.

이번 신진작가공모에도 180명이 지원했는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1차 선정으로 6명에 뽑혔고,

6명 중에서 온라인 투표를 해서

최종 2인에 선정되었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경력단절이 10년 이상이 돼서

실력을 검증받을 방법이 공모에 당선되는 것 밖에 없다

생각해서 지금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그녀의 말이 참 감동적이었다.

                                           < 내가 픽한 김지희 작가 작품 >


전시 첫날, 어찌나 감정이 북받치는지

두 달 동안 잠을 아껴가며 작업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생각나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들을 함께 나누던 친한 지인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녀가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우리 아들의 친구 엄마로서만 봤다가

이렇게 멋진 작품을 그리는 화가로서 그녀를 마주하니,

더욱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컸다.


그녀는 앞으로도 올해 확정된 3번의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이번 첫 전시로 많은 곳에서 전시 제의도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13년 동안 엄마로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어쩌면 한편으론 불안했던 진정한 자신에 대해

화가 김지희에 대해

안정된 자신의 자리를 더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작품 활동을 통해

그녀는 불안과 두려운 감정에서 벗어나

더욱 희망차고 활기찬 그녀의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된 듯하다.

엄마 김지희에서

화가 엄마 김지희 작가로

그녀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과 전시를

나 또한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의 꿈이 위대하다는 걸 그녀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오늘의 속삭임>


Unknown Scene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다.

그곳은 우주 안의 한 행성일 수도 있고 사이버 공간의 가상세계일 수도 있다.

특히, 가상의 공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을 정확한 지점으로 느낄 수 없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생긴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공간의 왜곡을 통해 표현한다.

그곳은 실제 앞뒤 관계와 원근감에서 벗어난

모순적인 공간이다.

그림 속 흐르는 이미지들은 사각 프레임을 벗어나

캔버스 안에 쌓여있는 층과 층사이의 공간을 넘나들며

유동적인 풍경을 만든다.

                                                                

                                                         - 김지희  작가 노트 중 -



























작가의 이전글 ep67.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