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이 아까워 직접 머리를 잘라요
오천 원 아끼려다
풍족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돈에 대한 그릇이 작다.
나는 한 번도 부모님이 사치 혹은 낭비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실은 돈을 제대로 쓰고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생선의 머리는 본인들이 잡수시고 살코기가 많은 몸뚱이는 자식들에게 내어 주시는 부모님이셨다. 아끼고 안 먹고 안 쓰는 것이 익숙하신 분들. 자식들이 어릴 때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치지만 현재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도 그 짠내 나는 습관이 여전하셔서 보기가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결혼을 하고 가끔 친정과 시댁에 빈손으로 방문하기 뭐 하니 작게나마 과일 같은 먹거리를 사갈 때가 종종 있다.
보통 시댁 어르신들 같은 경우는
"맛있게 잘 먹겠다." 며 나이스하게 받아주신다. 이와 반대로 친정 부모님은 "아이고, 돈 아껴야지. 뭘 이런 걸 사와. 이렇게 돈 쓰다가 집은 언제 산다니~"라고 말씀하신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그런 말도 여러 번 듣다 보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증이 난다.
“엄마~! 그냥 좀 먹으면 안 돼? 이게 얼마라고 무슨 집을 사느니 마느니까지 이야기를 해?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응?”
“이렇게 펑펑 쓰다가는 돈을 못 모으니까 하는 소리지~”
“엄마~ 우리 시댁은 이런 거 사가면 그냥 고맙다고 하고 드셔. 근데 왜 엄마는 이깟 사과 하나도 제대로 못 먹는데?”
화가 난 나는 부모님에게 이렇게 퍼붓는다. 정말 화가 났을 때이다. 한 번도 돈을 제대로 쓰고 살아본 적이 없으시다 보니 무조건 아껴야만 잘 산다는 가난한 마인드를 갖고 사신다. 나도 이들의 가르침 속에 자라 어쩔 수 없이 아끼면서 짠내 나게 살고는 있지만 꼭 그렇게 살지는 말자고 다짐하며 돈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에 있기도 하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친정 부모님이 오셨는데 엄마의 머리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알고 보니 미용실 커트비 만이천 원이 아깝다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셨다고 한다. 거기다 본인의 커트 솜씨가 제법 괜찮지 않냐고 남편에게 자랑을 하고 계셨다. 꼭 쥐가 파먹은 듯, 들쭉날쭉한 머리를 보고 나는 민망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돈 줄 테니 미용실 가서 잘라 좀~!”
“뭐가 어때서 그래? 이쁘기만 하고만~”
우리 엄마라는 사람은 미용실에서 만이천 원씩이나 주고 커트를 하는 게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인 것이다. 염색도 마찬가지다. 커트보다 비싸긴 하지만 미용실에서 하면 색이 일정하다. 하지만 엄마는 집에서 이 색 저 색 섞어서 스스로 염색을 하신다. 그래서 항상 머리가 빨간 머리 앤처럼 얼룩덜룩 지저분하다. 만 얼마짜리 커트도 안 하는데 이삼만 원짜리 염색을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런 엄마의 습관이 지겹고 지긋지긋해서 탈출을 꿈꾸고 있지만, 가끔 나에게도 엄마와 똑 닮은 모습이 튀어나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안녕하세요~ 앞머리 자르는데 얼마인가요?”
“오천 원입니다.”
“네? 네....”
’무슨 앞머리를 자르는데 오천 원이나 달라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집에 와서 스스로 앞머리를 자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전체 커트보다 앞머리 하나 자르는데 오천 원은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도 가난한 자의 합리화 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스스로 앞머리를 잘라보지만, 미용실에서 자른 것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가지지 않고 댕강 잘라놓은 빗자루 마냥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리를 까고 다니게 된다. 그렇게 며칠을 기분 나쁘게 지내다가 결국은 다시 미용실을 간다. 나의 이상한 앞머리를 보신 미용실 원장님은,
“머리가 왜 이래요? 혹시 집에서 잘랐어요? 너무 짧은데? 좀 길러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하거나,
“머리가 왜 이래요? 혹시 집에서 잘랐어요? 너무 짧아서... 여기서 더 짧아질 거예요~ 한참 길러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냥 바로 미용실로 오지 그랬어~”
라고 말하신다.
그제야 나는 겨우 오천 원을 아끼려고 내 금쪽같은 시간을 버리고, 기분까지 상하고, 미용실 원장님에게 돈 없어서 머리도 못 자르는 취급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시간을 돈과 교환한다. 일을 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을 받아 한 푼 두 푼 아껴 생활을 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자신들의 돈을 써서 시간을 활용한다. 일상적인 일들은 돈을 써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고 부자는 그 시간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사실 나의 주변에는 부자가 없어서 그저 주워들은 것을 풀어보았다.)
나는 가난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 하면서도 몸에 밴 흙수저의 삶은 쉽게 털어지지 않는다. 지금 오천 원 아끼려고, 오천 원 보다 더한 많은 귀중한 것들을 내 삶에서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된다. 하지만 내가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들, 부자들의 마인드. 그것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