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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작자들의 이상향, <8과 1/2> 리뷰

by 조종인



<8과 1/2>의 포스터 중 하나.


<8과 1/2>은 1963년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발표한 영화이다. 필자가 이런 생소한 감독의 생소한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추천(?) 때문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로스트 하이웨이> 등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영화로 유명한 데이비드 린치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영화 top 10 리스트에 이 영화를 넣었는데, 필자 그 리스트를 보고 흥미가 생겨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니체의 미발표 글들을 모아 만든 책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예술은 삶을 가능케 하는 위대한 움직임이며, 평범한 삶에서 도피할 수 있게끔 사람들을 자극하는 위대한 유혹이다. 예술은 삶을 부정하려는 모든 의지를 짓누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예술은 인식하는 자를 구제한다. 즉 비극적 인식에 사로잡힌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 예술은 행동하는 자를 구원한다. 즉 비극적·전투적 인간인 영웅을 구원한다. 예술은 고뇌하는 자를 구원한다. 개인적인 고뇌를 정화시켜 한 개인의 극히 일상적인 고뇌마저 위대한 삶의 형식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

by 프레드리히 니체 -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자신의 우울증을 승화시켜 만든 영화, <멜랑콜리아>

바꿔 말하면 본인의 부정적 감정과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니체의 이 말 외에 여러 책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의 해결 방법으로 '예술의 창조'를 꼽기도 하며,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그 방법을 채택하기도 한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캐릭터 '구이도'


<8과 1/2> 또한 그 예시에 들어갈 수 있겠으나, 앞서 말한 작품들과는 다른 성격을 띤다. <멜랑콜리아>와 <변신>과 같은 작품의 경우, 창작자의 부정적인 감정을 원류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낸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8과 1/2>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했다기보다, 불안해하고 있는 감독 본인의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전개 방식을 취한다.


주변 제작자들의 계속되는 간섭에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구이도. 급기야 그는 차 안에 갇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꿈까지 꾼다.


작중 영화감독 '구이도'는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중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본인의 유년기부터 현 상황까지 모두 담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가 너무 불친절하다.", "영화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구이도를 공격한다. 뿐만 아니라 구이도의 머릿 속도 혼란 그 자체이다. 세상을 떠난 본인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 점점 사이가 악화되어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부인에 대한 생각, 그와는 별개로 계속 떠오르는 다른 여자에 대한 욕구 등등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구이도의 주변인들은 구이도가 명확한 입장 혹은 의견을 밝혀주기를 바라지만 그럴수록 구이도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구이도가 꾸는 환상과 꿈이 가장 잘 드러나는 하렘 장면.


<8과 1/2>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구이도의 상황과 그의 머릿속을 그대로 드러낸다. 꿈과 현실이 혼재되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다.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으며, 보편적이지도 않은 영화의 플롯은 묘하게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구이도이자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이야기는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고뇌하는 창작자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본인의 고뇌를 그대로 옮겨놓음으로써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걸작이 완성되었다.


<8과 1/2>은 고뇌하는 창작자들에게 페데리고 펠리니가 제시하는 하나의 모범답안이자 이상향이다. 그는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지 않고,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는 것만으로 걸작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8과 1/2>이 들뢰즈의 그 말을 실현시킨 작품으로 보인다.



개인 평점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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