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딱 맞는 자기표현의 수단, 글쓰기
'글쓰기'는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점점 어려운 행위처럼 여겨졌다.
분명히, 글을 쓰고 나면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풀리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해 내는 데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니, 효율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내 입장에서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행위였다.
그러던 중, 상당히 우울한 일이 나에게 찾아왔다.
옛날에 응어리진 것들이 한 번에 되살아나고,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누군가를 해치고 싶다는 위험한 마음에 휩싸였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소연도 해봤지만 우울함이 모두 다 해소되지는 않았다.
내 마음이라는 우물 안에 쉽사리 치울 수 없는 무거운 돌이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그 돌을 빼낼 방법을 찾던 중, 인터넷 서점에서 <쓸수록 내가 된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글쓰기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해소하고, 생각지 못했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시야를 제시해 주었다.
새롭게 얻게 된 시야를 오랫동안 내 안에 간직하고, 나에게 찾아온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변화 하나하나를 글로 써보고자 한다.
생각해 보면, 펜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그 펜을 든 사람을 먼저 바꾼다. 쓰는 내가 내 글을 짓는 줄만 알았는데, 쓰는 만큼 글도 나를 창조했다. 씀으로써 나는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나'가 됐다. - 22p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을 만큼 번민하고 고뇌하며 고난을 뛰어넘은 자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한다. 자기 극복을 치열하게 하는 자일 수록 더 많이, 더 격렬히 성장하고 변화한다. by 니체. - 36p
글쓰기란 치열하게 삶을 사는 행동이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수동적으로 글이나 영상을 받아들일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열된다. 그렇게 탄생한 문장을 보면 내가 알지 못하던 나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 문장, 한 문단, 한 페이지를 완성할수록 조금씩이지만 과거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간다.
부정적인 감정이 훌륭한 예술의 원료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책으로는 <인간실격>, 영화로는 <멜랑콜리아>나 <8과 1/2> 같은 작품들은 모두 창작자의 부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걸작들이다. 하지만, 예술가도 아닌 내가 그런 걸작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뿐더러, '이걸 만들어봤자 누가 보겠어?'라는 회의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 안에는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못난 것들이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약점들은 나 자신 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것들이기에 그저 내 마음을 할퀴는 것들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나는 쓰는 사람이지 않나. 이것을 상기해 볼 때 나의 약점은 더 이상 쓸모없는 짐이 아니라 나만의 창작을 위한 훌륭한 재료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약점은 인간의 보편적 약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검은 물감'이다. 작가로서 내가 그 물감으로 글을 쓸 때야말로 인간 존재를 깊이 그려낸 글이 탄생할 것이다.
쓸수록 나는 더 강해졌다. 쓸수록 내 약점이 약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 약점이란 게 별로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찌 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 174p
그러니 나는 더 적극적으로 내 트라우마, 불안과 공허, 슬픔과 아픔, 우울, 상처와 후회, 부담 등을 물감 삼아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어두움이 같은 어둠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희미하게나마 발 앞을 비춰주는 불빛이 될 수도 있을 테니. - 177p
누군가의 모진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가 되었을 때도 그 상처가 언젠가 내 글의 가장 아름다운 문양으로 남을 것을 직감한다. 그러니 그 사람을 그만 미워하기로 한다. 이런 자발적 '어쩔 수 없음'을 나는 사랑한다. 자기 운명의 그림자까지도 끌 어안는 태도로 글을 쓰고 살아간다면 삶의 고통도 그 의미를 찾아 숭고한 빛을 띨 것이다. - 185p
시야 2는 시야 1과 연결되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만들어낸 예술 작품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결국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갈고닦고 긍정적인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힘들었던 경험과 다시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이런 일을 겪었어요'라고 사방팔방 외치면서 마음속에 가라앉은 무거운 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다. 또한, 나중에 비슷한 경험을 겪은 내가 그 글을 다시 보면, '이때는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 잘 극복했구나.'라며 극복의 의지를 다질 수 있다. 그저 흉하게 보이기만 했던 상처는, 아픔을 극복하고 나서 보면 극복의 훈장이다.
나는 어느 정도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떤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글도 마찬가지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상당히 깊은 감명을 받았음에도, 그것들을 잘 표현할 자신이 없다면 어딘가에 글로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음 부분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뻔뻔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생각 덕분이었다. 일가를 이룬 작가들을 보면 대표작뿐 아니라 초기 작품도 남아 있다. 작가로서 완숙기에 이르러 쓴 글이 가장 가치 있긴 하겠지만, 가능성이 엿보이는 초기작도, 조금은 힘이 빠진 말년의 작품도 그 작가를 더 넓게 바라보게 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내가 비록 대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지금 내 글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미래에 작가가 될 사람의 초기작이 라고 생각하니까 출판할 용기가 생겼다. - 194p
내가 보기에 기준 미달의 글이라도, 그걸 쓰지 않는다면 나 자신도, 그리고 세상도 전혀 바꿀 수 없다. 부족한 글은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 될 것이다. 나는 항상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함"을 포용하지 못하는 자세는 나 자신이 더 좋은 글쓰기를 하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부족한 생각, 부족한 글이라고 해도 일단은 뱉어내자. 혹시나 그 글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인생 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예술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 예술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원동력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쓸수록 내가 된다>는 우울한 일로 바다 깊은 곳을 표류하던 나에게, 다시 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을 내려준 책이다.
나도 이 책에 의해 구원받았듯이, 누군가를 구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