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길들이기>, 나를 돕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

<직장상사 길들이기> 리뷰

by 조종인

※ 해당 리뷰는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필매거진'에 기고했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업로드함을 밝힙니다.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작품의 외적인 조건만 놓고 보아도 영화 팬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닌 영화다. 그 중심에는 무엇보다 감독 샘 레이미가 있다. 그는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시리즈>의 감독으로 가장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본래의 장기는 <이블 데드 시리즈>, <드래그 미 투 헬>로 대표되는 B급 호러 장르였다. 이후 그는 마블과 손잡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연출을 맡아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평단과 관객에게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평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4년의 시간이 지나 본인의 장기인 B급 호러 작품, <직장상사 길들이기>로 다시 돌아왔다. 단순히 작품을 맡은 시간의 공백으로만 따져도 4년이지만, 호러 장르로의 복귀는 <드래그 미 투 헬> 이후 무려 17년 만이다. 이러한 그의 복귀 뉴스는 뭇 장르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직장상사 길들이기>에는 샘 레이미가 감독이라는 것 외에, 또 하나 팬들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레이철 맥아담스가 주인공 역으로 출연하는 것이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금발의 머리, 빛나는 눈, 아름다운 미소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노트북>, <어바웃 타임>,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을 통해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져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대표 이미지와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작품을 선택했다. 자연히 그녀의 팬들 사이에는 기대와 함께 적잖은 우려도 뒤따랐을 것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본진’으로 돌아온 감독과, 스스로의 대표 이미지를 벗어던지며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배우.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효과 확실한 클리셰 분쇄기


<직장상사 길들이기>의 스크린에서 나타나는 것은 '더러운 액체'의 연속이다. 사람과 동물의 피, 멧돼지의 분비물, 곤충이 짓이겨지면서 내뿜는 진액까지. 온갖 더러운 액체들을 뒤집어쓴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굳이 저것까지 보여줘야 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허나 그 강렬한 이미지들이 이 영화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음을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통해 자신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경고장을 보내는 것만 같다. 그러한 히어로 무비 특유의 정돈되고 깔끔한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던 관객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다.


예상을 깨뜨리는 것은 비단 연출만이 아니다. 영화의 서사 역시 관객이 쉽게 떠올릴 법한, 이른바 ‘클리셰들’을 정면으로 파괴하며 나아간다. 이야기는 <Man vs. Wild>를 연상케 하는, 당찬 여성의 무인도 생존 버라이어티처럼 시작된다. 무인도에 오기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녀, 조난지에서의 사건들을 거치며 역전되는 위계, 생존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신체와 감정. 영화는 관객이 이전에 보아온 수많은 작품의 기억을 발판 삼아, 상상의 기차를 ‘특정한 방향’의 선로로 유도한다.


그러나 그 기차가 종착지에 다다를 즈음, 영화는 갑작스럽게 선로의 방향을 바꾼다. 생존 버라이어티가 로맨스로 이행하는 듯 보이는 순간, 영화는 돌연 <팬텀 스레드>를 연상시키는 두 남녀 간의 권력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그 전투가 끝나갈 무렵, 영화의 장르는 또 한 번 호러/스릴러로 급격히 전환된다. 이처럼 혼란스럽게 장르가 뒤엉키는 흐름 속에서도, 레이첼 맥아담스는 각 장르에 걸맞은 연기 폭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관객의 몰입을 지탱한다. 이 작품을 보고 난 뒤에도 그녀를 여전히 ‘러브 코미디의 히로인’이라는 대표 이미지 안에만 가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관객이 특정한 방향으로 상상을 확장하도록 유도한 뒤, 그 상상 자체를 무자비하게 박살 내버리는, 철저한 ‘클리셰 분쇄기’에 가깝다.


도움을 주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의 원제는 <Send Help>이다. 직역하면 '도움(구조 요청)을 보내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도움을 보내는(주는) 쪽은 누구이며, 그 도움을 받는 쪽은 또 누구일까? 영화의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지, 이 관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도움을 주는 쪽은 여주인공 린다이고, 도움을 받는 쪽은 그녀의 직장상사 브래들리이다. '서바이벌'에 대해 해박한 지식도 가지고 있을뿐더러 행동력도 앞서는 린다. 그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브래들리는 이 무인도에서 생존할 수 없음을 깨달은 브래들리. 브래들리의 굴복과 함께 둘 사이의 위계질서가 뒤바뀐다. 그러나, 브래들리는 이 뒤바뀐 위계질서를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러 번 린다에게 반기를 들어 위계질서의 전복을 꾀한다. 이에 린다 또한 그에게 강하는 압박의 강도를 점차 높여간다.


거듭된 도움에도 개심하지 않는 브래들리, 그의 행동은 린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린다는 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로, 이 영화에서 도움을 받는 대상이 바뀐다. 브래들리에서 린다로. 물론 도움을 주는 쪽은 그대로 린다다. 린다가 자기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조난당하기 전에도 구출된 후에도, 그녀는 앵무새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앵무새는 눈앞에 있는 인간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렇기에, 인간이 앵무새에게 어떤 말을 하면 인간은 자신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돌려받는다. 이 영화의 구조와 주제의식도 그와 마찬가지다. 내가 도움을 행하면 그 도움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그러니 그리고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샘 레이미, 그리고 레이첼 맥아담스가 돌아왔다.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건재함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유형의 서사 전개와 연기를 선보이며 팔색조 같은 매력 또한 보여주었다. 샘 레이미가 직전에 맡았던 작품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임을 상기해 본다면 이러한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최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을 맡았던 감독들이, 자신들의 색채를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을 선보여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 팬서>의 감독이었던 라이언 쿠글러는 <씨너스: 죄인들>, <이터널스>의 감독이었던 클로이 자오는 <햄넷>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샘 레이미의 <직장상사 길들이기>까지, 모두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마블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내보이기 시작한 감독들이, 앞으로도 어떤 작품들을 선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이미지 출처 : TMDB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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