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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리뷰

닿을 수 없는 사랑의 끝은 어디로 향하는가

by 조종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판. 필자는 열린책들 출판에서 나온 판본으<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판. 필자는 열린책들 판본으로 읽었는데, 이번 경우에는 민음사판이 표지가 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1774년 발표한 소설로, 당시에 상당한 화제와 논란을 몰고 왔던 작품이다. 책을 전부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책의 내용을 대강 알고 있거나, '베르테르 효과'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필자도 고전 소설에 꽤 흥미가 있는 지라 구입만 해놓은 상태였는데, 연휴 기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보았다가 상당히 놀라게 되었다. 필자가 놀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래에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젊고 감수성이 풍부한 베르테르는 시골 마을 발하임에 머무르며 자연과 예술에 심취한 삶을 살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샤를로테(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 알베르트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다.

베르테르는 로테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점차 그녀와의 거리감을 인식하면서 괴로움에 빠진다. 로테는 그를 걱정하면서도 분명한 거리를 두려 한다. 베르테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노비를 변호하게 되는데,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던 알베르트와 대립하는 상황에 놓이며 로테와의 사이는 더 멀어지게 된다. 베르테르는 혼란과 절망 속에서, 점점 현실로부터 고립되고 만다. 결국, 사랑의 열정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을 겪던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사랑의 양면성

예전에 온갖 행복의 원천이 내 안에 숨어 있었듯, 이제 온갖 불행의 원인이 내 안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네. 예전에 나는 풍성하게 넘치는 감정을 만끽하였고, 가는 곳마다 낙원이 내 뒤를 따라다녔으며, 내 마음은 온 세상을 사랑스럽게 포옹하지 않았던가? 그러던 내 마음이 이제는 죽어서 기쁨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고 눈물 한 방울 샘솟지 않는다네.


사랑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경우도 많지만,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지옥을 경험하기도 한다. 많은 영화나 책에서는 그런 양면성 중 하나를 택한 뒤 그쪽에 집중하며 다루는 방법을 취한다. 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의 양면성을 둘 다 다룬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사랑에 빠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는 꿈만 같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작품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하느님이 성인(聖人)들에게나 베풀어주셨을 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로테가 결혼을 하게 되자, 베르테르와 로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상황이 바뀌자, 동전이 앞면에서 뒷면으로 뒤집어지듯 사랑은 너무나 쉽게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로테가 유부녀가 되자 베르테르는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열망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늘에 아무리 손을 높게 뻗어보아도 그 끝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이처럼 베르테르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계속해서 갈구하며, 끝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결국, 이전에 베르테르에게 행복의 원천이었던 사랑은 불행의 원천이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뒤집히는 사랑의 양면을 보면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존재를 좀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고된 파국, 베르테르의 자살

알베르트 :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일세. 그 생각만 해도 혐오감이 치민 다네.
베르테르 : 자네들은 무슨 말만 하면 금방 '그것은 어리석다. 현명하다,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자네들은 행동의 내적인 관계를 깊이 조사해 본 적이 있는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확실하게 밝혀 낼 수 있는가? 자네들이 정말 밝혀 냈다면, 그렇듯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지 않을 걸세.


베르테르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결말에서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 번째로, 그는 알베르트와 다르게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베르테르가 처한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포용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칼로 찌르고 싶은 충동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에게 그런 포용심은 역효과를 낳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죽음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 베르테르는 자신의 분노를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분노를 느낄 때, 그 감정을 상대방에게 직접 표출하거나, 때로는 아무 관련 없는 대상에게 화를 내며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로테를 너무 사랑했고, 알베르트 역시 인간적으로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또한, 여린 마음을 가진 그는 아무 관련 없는 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분노의 활시위는 자신을 향하게 되었고, 그는 그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쏘고 말았다.


베르테르 효과와 작품이 촉발한 논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출간 직후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의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말은, 특히 젊은 독자들의 강한 감정적 몰입을 불러일으켰고, 18세기 후반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시도하거나, 그와 유사한 복장을 하고 생을 마감한 이들이 보고되었다. 이와 비슷한 효과를 훗날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로 명명하는데, 유명인의 자살이나 자살을 미화한 작품이 대중의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리킨다. 이런 일이 발생하자 저자인 괴테에게도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런 사람들의 말에 괴테는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 그나마 약간 남아 있던 희미한 빛마저 완전히 불어 끄는 것 말고는 더 나은 할 일이 없었던 얼간이와 건달 몇 명을 이 세상에서 없애 주었을 뿐입니다. 귀하는 이런 작가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그 작품을 비난할 생각이십니까?



마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8세기에 나온 소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자가 베르테르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괴테가 감수성 풍부한 베르테르의 내면 심리를 글로 너무 잘 풀어내서, 현대의 독자들이 읽어도 감탄할만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책에는 사랑에 관련된 내용들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베르테르의 생각들도 나오는데, 그 부분들도 꽤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사랑이나 인생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면,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이 책을 꼭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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