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by 김지우

"양극성 장애예요." 죽을 듯이 우울한 감정이 들고 계속 심해져 가는 자해 충동으로 인해 드디어 대학병원을 찾았을 때 들은 말이었다. 물어보는 질문 몇 개에 대답하고 내 증상이 뭔지 물어봤더니 조울증이라니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20대 때는 우울증의 양상이 조울증의 형태로 온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들에게 내 병명에 대해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직장 생활로 인한 우울증. 남들에게 한 번에 이해받기에 딱 좋았다. 우울한 증상만 잘 이겨내면 예전처럼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나로 돌아갈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단순히 한 사건과 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됐다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사실 내가 그것을 제일 잘 알았다. 그렇지만 그 실체를 보기가 두려워 계속해서 남 탓을 했다. 남 탓을 실컷 하다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끝이 날 때도 있었고, 현실을 받아들일 힘이 없어 잠에 들 때까지 엉엉 울다가 잠에 들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은 적이 있다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조그마한 실마리를 찾았다. "너는 어떤 것 때문에 힘들었어?" 내가 물었다. 친구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자존심 굽혀야 했던 모든 순간들. 그게 한 번에 터졌었지."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고 그 말이 계속 가슴에 남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지? 나에게 막말하고 여자라고 무시하던 직장 상사? 아니면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 모두 아니었다. 사실 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 소신과 신념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한없이 작아졌던 '나 자신'에게 화가 잔뜩 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하는데 나조차 나를 혐오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이 가여웠다. '미안해. 내가 널 사랑해주지 못했어.'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나를 혐오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사랑해 주니 삶을 살아나갈 힘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서점에 가서 조울증과 관련된 책을 찾았다. 우울증에 관한 책은 많은데 조울증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았다. 책 4권을 구매하고 첫 번째 책인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2형 양극성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완치라기보다는 평생을 관리하며 지내야 하는 숙제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던 나의 연애스타일은 어린 시절 엄마와의 애착 형성 실패로 인한 것이며, 가끔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던 활기참은 '경조증', 한 번씩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우울해졌던 것은 '우울 삽화'. 그동안에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한 번에 이해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인정했다. 나는 원래 조울증이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병은 평생 나와 함께 가야 할 친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이제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나는 우울하다. 그리고 경조증 상태였을 때의 활발하고 자존감 높고 빛났던 내가 그립기도 하다. 그렇지만 약을 복용하며 살면서 거의 처음 느껴보는 것 같은 평안하고 평범한 지금의 상태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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