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시간을 음미하다

Café Sperl 카페 슈페를

by 장성혁

카페 슈페를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마주치기 어려운 곳에 있다. 링슈트라세 근처도 아니고, 나슈마르크트의 활기찬 대로변에 딱 붙어 있는 카페도 아니다. 시장의 소음과 인파를 뒤로한 채, 좁은 골목으로 한 블록쯤 들어서야 한다. 길이 맞는지 잠시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카페가 나올 법한 분위기는 이미 지나간 것 같고, 그냥 주거지 쪽으로 더 깊이 들어온 느낌이 들 때쯤이다. 그때 삼거리 모퉁이에서, 예상보다 큰 간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카페 슈페를.’ 눈에 띄게 화려하지도, 숨기듯 작지도 않은 간판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굳이 나서서 손님을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한 태도다. 이 카페가 어떤 시간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문 앞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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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직원이 먼저 인원을 묻는다. 말투는 친절하다기보다 담담하고, 필요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손님이 많을 때는 곧바로 자리를 안내받지 못하고, 문 근처에 잠시 서 있게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잠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서 있는 동안 안쪽 테이블들을 한 번 훑어보게 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 신문을 펼친 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손님들, 오래된 공간에 익숙해 보이는 몸짓들. 슈페를에서는 기다림조차도 잠깐의 체류처럼 느껴진다. 급히 재촉하는 기색도, 미안해하는 눈치도 없다. 이곳에서는 서 있는 시간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뒤늦게 다가온 직원은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판을 테이블 위에 무심히 내려놓는다. 특별한 설명도, 추천도 없다. 빈에서는 ‘비엔나 커피’라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는 나는 멜랑쥐와 아인슈페너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다. 아침에 이미 멜랑쥐를 마셨으니, 오후에는 아인슈페너가 어울린다는—스스로에게만 통하는 논리로 주문을 건넨다. 직원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리를 뜬다. 그제야 천천히, 이 카페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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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를 안쪽에는 관광객보다 이 공간에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훑는 시선은 드물고, 대신 신문을 펼친 손,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자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카페에 ‘와 있다’기보다, 일상의 연장선에 잠시 앉아 있는 느낌이 더 강하다.

눈에 남는 것은 벽이 아니라 의자다. 오래 사용된 패브릭 커버는 분홍빛을 띠고 있는데, 새것의 색이라기보다는 시간이 빠져나간 색에 가깝다. 한때는 분명 선명했을 색이었을 테지만, 수많은 손과 옷자락을 거치며 지금의 톤으로 남았다. 슈페를의 분홍은 장식을 위한 색이 아니라, 사용된 시간 그 자체처럼 보인다.

이 의자들은 공간을 꾸미기보다는, 오래 앉아도 괜찮다는 신호에 가깝다. 색은 시선을 붙잡지 않고, 대신 머무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새로워 보이려 애쓰지 않는 태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같은 것들이 이 작은 색감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누구 하나 이 공간을 특별하게 소비하려 하지 않는다. 이 카페는 여전히 누군가의 단골 카페이고, 오후의 습관이며, 반복되는 하루의 일부다. 그래서인지 슈페를에서는 시간이 흐른다기보다, 같은 장면이 조금씩 다른 얼굴로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커피가 나오기 전까지의 이 짧은 기다림조차도, 이미 이 카페의 시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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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슈페를의 역사는 숫자로 시작하기보다, 오래 남아 있는 태도로 먼저 감지된다. 이곳이 1880년에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몰라도, 슈페를에 앉아 있으면 이 공간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느껴진다. 테이블의 높이, 의자의 감촉, 공간을 채운 소음의 밀도까지—모든 것이 급히 조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 카페는 새로워지기보다는, 오래 머무는 쪽을 선택해 온 공간처럼 보인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빈 분리파로 불린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는 하나의 건물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세체시온 전시장을 중심으로, 미술아카데미와 응용미술학교, 그리고 나슈마르크트 일대의 작업실과 카페들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었다. 새로운 형식은 전시장에서 선언되었고, 기술과 언어는 학교에서 다듬어졌으며, 그 사이의 시간은 카페에서 흘러갔다.

카페 슈페를은 바로 그 흐름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공간이었다. 세체시온 전시장과 가까웠지만, 그 열기 한가운데에 있지는 않았고, 나슈마르크트의 활기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새로운 것을 외치는 장소라기보다, 이미 던져진 질문들이 잠시 속도를 늦추는 지점에 가까웠다. 토론이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토론이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자리. 슈페를가 품은 사색은 언제나 한 박자 느렸고, 그 느림은 이 카페가 선택한 태도였다.

이런 위치는 공간의 모습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슈페를은 시대가 바뀌는 동안에도 내부를 급히 바꾸지 않았다. 옛 비엔나 카페 특유의 인테리어는 ‘보존’이라는 말보다 ‘유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낡았지만 방치되지 않았고, 오래되었지만 과거에 갇히지 않았다. 바뀌지 않은 것들은 의도적으로 남겨진다기보다,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슈페를의 공간은 늘 현재형이지만, 그 현재는 빠르게 갱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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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도는 현대의 시선에도 묘하게 닿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 속에서 제시와 셀린이 잠시 머물렀던 카페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이 그 공간에서 나눈 대화는 거창하지 않았고,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조용히 흘렀다. 슈페를은 그런 ‘유예된 시간’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장소다. 이곳에서는 중요한 이야기조차 서둘러 끝내지 않는다.

슈페를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멈췄다기보다는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감각이 먼저 든다. 같은 자리에 머문 채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 한 세기가 넘는 동안 이 카페를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지금의 손님들 역시 그 반복 속에 잠시 자리를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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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말없이 식어간다. 슈페를에서는 그 변화가 유난히 또렷하다. 잔 위에 남아 있던 김이 사라지고, 크림이 가라앉는 동안 이 공간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생각도, 말도, 결론도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슈페를의 공간은 바뀌지 않는다. 의자와 테이블, 익숙한 배치와 바랜 색감들은 시간을 붙잡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조건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새로워지지 않아도 괜찮고, 그대로여도 충분하다.

잔을 내려놓을 즈음이면 커피는 이미 미지근해져 있다. 하지만 그 온도는 아쉽지 않다. 오히려 이 카페가 허락한 시간만큼, 충분히 머물렀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슈페를은 늘 그런 장소다. 무언가를 완성하기보다는, 식어가는 시간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유예된 시간의 자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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