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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혁 Jun 14. 2022

사악할 수밖에 없었던 "베니스 상인"의 사연

베네치아, 베니스에서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이야기

*저는 지금까지 베네치아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글을 썼으나, 본문에서는 "베니스의 상인"을 다루고 있기에 불가피하게 베니스와 베네치아를 혼용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사악함의 대명사다. 주인공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돈을 제 기간에 갚지 못할 시 심장에 가까운 1파운드의 살을 제공한다는 증서를 주고 돈을 빌린다. 그런데 상인이던 안토니오의 무역선이 침몰했다는 소문이 들어오고, 안토니오가 돈을 갚기 어려운 지경에 놓이자, 샤일록은 1파운드의 살을 얻어가기 위해 안토니오를 재판정에 고소하고, 그 과정에서 현명한(?) 판결이 나는 과정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베네치아를 무대로 하는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대충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2005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알 파치노라는 쟁쟁한 두 대배우 주연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베니스의 상인 초판, 영화 베니스의 상인 포스터 (출처: 위키백과, 다음영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유대인인 그는 왜 그렇게 작품 속에서 사악할 수밖에 없었을까. 타고난 천성이 뼛속까지 악인 이어서일까. 아니면 그 또한 나름의 자기만의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 나는 그래도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중세시대부터 유럽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이어왔다. 물론 그 전 서기 70년경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민족이 전 유럽을 떠돌던 시기부터 그 고난이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특히 더 눈에 띄게 된다. 중세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바로 유대인이라며 유대인들을 차별한다. 더구나 교리로 이자를 금하면서, 금융업에 종사할 수 없었던 유럽 기독교인들을 대신해서 천한 유대인들이 금융업에 종사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들을 돈 놀이꾼으로 더욱 멸시했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당시의 반유대주의,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베네치아의 게토 구역, 빨간색 선이 처진 입구는 유대인 박물관 입구다. 당일은 휴관이었다. (출처: 필자)

그런데 영국인, 잉글랜드인이었던 셰익스피어가 하필 왜 영국이나, 프랑스의 유대인이 아닌, 베네치아의 유대인, '베니스'의 상인을 주인공으로 했을까. 베네치아의 서북쪽, 카나레조 구에는 조금 특별한 구역이 있다. 바로 게토(Ghetto)다. 일단 게토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건물들 사이로 좁게 난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그나마 지금도 게토와 베네치아 나머지 지역을 이어주는 것은 단 3개의 다리뿐. 이 3개의 다리만 막으면 이 조그마한 구역은 철저히 고립될 수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게토에 들어오면 광장이 보이고 그 광장을 둘러싼 건물이 보인다. 이 구역에서 수 백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것이다.

베네치아의 게토 구역, 세 다리로 연결된 섬이 게토 구역이었다. (출처: 구글지도)
게토 구역을 이동할 수 있는 세 개의 다리(출처: 필자)

 1300년대까지 이 지역에는 대포를 만들기 위한 주물소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 지역을 베네치아 방언으로 철을 주물 한다는 뜻을 지닌 gheto에서 게토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전승이 있다. 베네치아는 당시 유럽에서 천대받던 유대인들을 중고 보석상, 고리대금업을 위한 근로자로 고용해 공화국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들은 1385년까지 베네치아 본 섬에는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1385년 최초로 3명의 고리대금업자가 베네치아 본섬에 체류가 허용되었다. 이 결정은 지극히 경제적인 판단에서 나왔는데, 경쟁국이던 제네바 공화국과 키오자 전투를 치르는 등  전쟁이 한창이었던 베네치아는 전쟁자금이 필요했다. 때문에 금융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을 베네치아 본 섬에 체류하게 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유대인 거주가 허용된 것은 이 게토 지역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기 시작한 1516년 무렵인데, 유대인들은 밤에는 거주구를 벗어나는 이동이 불가능했으며, 조선소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을 알리는 산 마르코 종소리가 울릴 때 비로소 아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게토를 지키는 입구는 4명의 기독교도 보초들이 감시했는데, 유대인들은 이들 보초들의 급여도 지불해야만 했다. 

베네치아 최조의, 가장 오래된 전당포가 있던 자리, 게토 내부에 있다. (출처 필자)

한때 이 좁은 구역에 유대인 700여 명이 거주했는데, 대충 한 사람이 거주 가능한 면적을 단순하게 나눠보면 2제곱미터쯤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감옥 독방이 감옥 별 상황에 따라 상이하기는 하지만 대략 6제곱미터에 6인 다인실이 12제곱미터쯤 된다고 하니, 700명의 유대인들은 6인 다인실 감옥에 사는 것과 큰 차이 없는 좁은 공간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벽 공간, 왼편에 초소는 군인들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군인은 카메라에 담으면 안되기에, 초소 밖을 순찰 노는 사이에 촬영했다. (출처: 필자)

그렇게 생존을 위해 이곳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았던 이들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게토 중심부를 돌아보았다. 한쪽 벽면에는 청동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홀로코스트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기차에 실려가는 이들, 가스실에서 물 대신 가스를 맞으며 고통 속에 신음하던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고, 오히려 뺏기고 죽음의 위협을 당하던 이들의 모습이었다. 누군가 빨간 장 미 한 송이를 그 앞에 두고 한 없이 벽을 응시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 얼굴에 내려앉은 웃음기 없는 슬픈 장막이 내 발걸음을 막었다. 나 역시도 한 참을 그 앞을 서성이다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무장군인이 영상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을 막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대인과 관련한 유적이다 보니 테러의 위험 때문인가 보다.

게토 전경 (출처: 필자)

열심히 벌어서 돈이 있어도, 더 나은 삶보다는 좁디좁은 구역에 갇혀 살면서 목숨과 자신의 종교를 위협받던 이들. 그 가운데에 '배니스의 상인' 샤일록도 있었다. 샤일록이 그토록 집요하게 안토니오를 살을 원했던 악인으로 변한 것은 그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차별과 멸시에 대한 분노 아니었을까. 물론, 분노를 타인에 대한 위해로 풀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 하지만, 난 고등학교 때까지 그냥 "본 투 비 악인 유대인 샤일록이 악한 마음을 먹고 계약을 해서 결국엔 인과응보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배웠다. 


낭만적인 베네치아에 게토 구역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베네치아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독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샤일록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면 어떨까.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면서 베네치아 최초의 전당포 자리 앞에 서면 몇 백 년 전 금융업의 태동이 오늘날 내 지갑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묘한 감정이 떠오른다. 한 번쯤 베네치아 게토를 들러서 샤일록의 이야기를, 억압받고 차별받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속에서 시작된 금융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지독한 악덕 상인 샤일록에게도 그런 분노를 가지게 된 한 줄기 사연이 있었다. 


*참고문헌

Alta Macadam, 『Blue Guide Venice』, Blue Guides Limited of London, 2014

위키백과 베니스의 상인 https://ko.wikipedia.org/wiki/%EB%B2%A0%EB%8B%88%EC%8A%A4%EC%9D%98_%EC%83%81%EC%9D%B8 (2022.06.12 검색)

다음영화 베니스의 상인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8888 (2022.06.12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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