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by 정진

우선 나는 불자다. 그런데 불자인 나에게도 익숙한 성경 구절이 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바로 이 구절이다.


어린시절,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따라 나간 적이 있어서 교회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다.

기독교는 무조건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나이에, 더욱더 저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서 죽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생하는데, 믿음보다 더 중요한게 사랑이라고? 사랑이 저 셋 중에 제일이라고? 왜?'


저 말은 서른 중반이 다 되도록 나의 인생에는 잘 와닿지 않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살면서 처음으로, 요즘 저 구절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부모 같지 않은 부모와, 차라리 없는게 나은 자매를 둔 집에서 태어난 나는

2년 전 원가정과 모두 연을 끊게 되었다.

그리고 믿었던 시댁과 배우자에게도 상처를 받고 작년 가을,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거라곤 회사뿐이었는데

지난달, 11년간의 사회생활을 뒤로하고 회사마저 그만두었을 때

소속이 하나도 없다는 그 허망함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의 정신을 힘들게 했다.


그래도 늘 살아온 대로 악바리 정신을 가다듬고

'나는 혼자서도 이 험한 세상을 다 헤쳐나갈 수 있어. 원가족도 배우자도 다 필요 없어.'

라며 하루하루를 바삐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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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이 곰탱이(리락쿠마)를 닮은 순둥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이야기가 꽤나 잘 통했고, 공통점이 많았다.


어린시절에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고,

또 우리와 같이 어렵게 자라는 아이들을 돕고자 사회복지 전공을 선택한 것까지 똑같았다.

심리학, 아동학 관련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성향도 비슷했다.


이 친구는 내게 늘 말해준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예쁘고 충분히 괜찮다고. 잘했다고. 잘해왔다고.'


요즘의 나는

매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일을 다니고 돈을 벌어야 했던,

불안감에 무언가를 해야만 하던, 끊임없이 챗바퀴를 굴리던 모습에서 벗어나


그냥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만나서 노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만한 시간, 완벽한 하루라는 생각이 든다.





KakaoTalk_20260220_171119967_01.jpg 회사 선배님이 차려주신 밥상


좋은 친구가 생긴 것 뿐만 아니다.

나를 늘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회사에서 만난 친언니같은 선배님께 받는 사랑도

나의 마음을 따듯하다 못해 뜨겁게 해준다.


고시원같은 작은 방 한 칸에서 사는 나에게

집밥이 먹고 싶지 않냐며, 집으로 초대해 주셔서 밥을 차려주고

설날엔 가족 없이 혼자 보낼 내가 걱정된다며

아침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전화를 주시는 언니의 사랑에 참으로 마음이 온전해진다.




KakaoTalk_20260220_171119967_02.jpg 요즘 내 감정


요즘 나의 하루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게 기쁘고 즐겁다. 또 만족스럽다.


그리곤 느꼈다.


'그래. 사랑이 제일이구나.' 라고.


결국은 사랑이다.

열심히 살고, 학위를 취득하고, 맛있는걸 먹고, 즐거운걸 하고

이러한 것들은 사랑 없이는 충분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사랑 하나만 있다면

(심지어 사랑을 받지 않아도 줄 수만 있다면, 주지 않아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만하다.


결국, 사랑이 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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