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Young

나는 개인적으로 안부를 묻는 성격이 아니라 지인들의 소식은 거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한다. 해외에 있은 지 오래되면서 아무래도 한국사람들과 대화하는 빈도가 떨어지고 얘기할 상대를 찾기 어려운데, 페북에 올라오는 글들이 그런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영어로는 전공 외 분야에 깊은 대화 불가능...).


나도 틈날 때마다 글을 써보려 했었으나 마음먹은 만큼은 못해왔다. 글을 올리지 않는 이유 중 한 90%는 게으름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부끄러움이다.


나는 내가 쓴 글에 별로 자신이 없다. 박사과정 하면서 는 거라곤 조심성 밖에 없어서 내가 쓰는 글들의 허점이 너무 잘 보인다. 그렇다고 짧은 글 안에서 허점들을 고쳐낼 능력도 안된다. 반박당할 줄 알면서 글을 올리는 것은 나에게 괴로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용감하게 아무 글이나 써서 공개했던 적이 있긴 하다. 대학생 때, 내가 읽은 책이 전부고 내가 하는 생각이 다 맞다고 여기며 어조가 강한 글들을 써서 학내 신문사에 싣곤 했었다.


근데 공부를 좀 더 하고 그때 글들을 다시 보니 뭐 그냥 쓰레기다.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글을 썼는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쓰는 글들을 한 10년 지나고 다시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거라 생각하니 더 글쓰기를 주저하게 된다. 더군다나 한글로 된 책 안 본 지 오래돼서 지금은 영어도 안되고 국어도 안되고...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론 글을 좀 더 자주 올려보려 한다. 내 글에 자신 있어질 때까지 조금 보류하려 했지만, 박사까지 받고 보니 앞으로 그런 날을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공부하면서 만난 학자들 중 겸손하지 않은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대가일수록 인간사회가 얼마나 복잡한지 더 잘 알고 있고, 한 가지 현상에 수많은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본인의 주장을 수정/철회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말하는 게 무조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학자의 자격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불변의 진리를 발견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대안이 될 순 없을 것이다. 최근엔 소통이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흥미로운 발표자를 만났다. 그 사람은 발표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어로) 제가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할게요. 발표 도중에 어떤 질문이 떠오르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말해주세요. 손을 들고 제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어요. 이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멍청한 질문인지 고민하지 마시고 바로 말하세요. 저는 어떤 질문이든 다 저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아무 관계없어 보이는 질문에서 종종 새로운 관점을 발견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혼자 떠드는 것보다 같이 얘기하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난 거의 질문을 안 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그리고 그 이후에도) 조금 더 편하게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보니 나도 점점 더 얻는 게 많아졌다.



돌아보면 그 철없던 대학생 시절이 내가 지적으로 가장 성장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 느끼기엔 부끄러운 글이지만, 내가 내 생각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나를 알릴 수 있었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소통을 통해 조금씩 궤도를 수정하고 더 깊은 이해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재미있었다.


게으름이 천성이라 매일 글을 올리거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한 마디씩 보태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당분간 길든 짧든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 포스팅을 꾸준히 올려보려 한다. 가끔 학위 받은 거 티 내는 글도 올리겠지만, 아마 주로 그냥 편하게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는 글이 많을 것 같다. 미숙한 부분이 있어도 너그러이 봐주시고 시간 날 때 코멘트도 달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