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Apr 11. 2020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번 선거는 다를 줄 알았다. 지난 탄핵을 끝으로 더이상 철 지난 색깔론과 반공주의는 안 봤으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복이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느니, 종북주의자들이 청와대를 장악했느니, 공수처 설치가 사회주의 개혁이라느니, 친중주의자들이 방역을 망쳤다느니... 끝이 없다. 더 안타깝게도 기독교인들이 종북몰이에 앞장선다. 심지어 이번 총선이 (아마도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대를 산 사람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구소련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한 지 오래고 공산주의를 표방한 중국과 북한의 일당독재는 부작용을 양산해왔다. 공산국가에서의 기독교 탄압은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에 반감을 가지는 원인 중 하나이다. 신혼여행으로 돌아봤던 국내 기독교 성지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자(a.k.a 빨갱이)들의 손에 순교한 기독교인들을 기념한다. 정서적인 저항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감이 경제/정치체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가장 큰 오해는 사회주의의 대립항으로서 자유민주주의 - 특히 자유주의 - 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데서 나오지 않나 싶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선거에 참여할 친구들을 위해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간략하게 설명해보았다 (근데 인트로부터 길다.. 망했...).


 혹시 여기서 그만 읽을 생각이라면 다음 두가지만 기억해주시면 되겠다. 첫째, 정치적 자유주의(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자본주의)를 구분해야 하며 정치적 자유주의와 대립하는 말은 권위주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대립하는 말은 사회주의이다. 둘째, 자본주의 역시 자유시장의 자기조절능력을 신봉하는 자유방임주의(보수주의)와 정부 개입을 통해 시장의 단점을 보완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리버럴리즘)로 구분된다.


 나는 우리나라의 집권당이 대략 정치적으로 자유주의, 경제적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장 가깝다고 본다. 정치적으론 권위주의에 저항해 왔고 경제적으론 사회주의와 대척점에 있으므로 현 정권을 향한 반공주의자들의 우려에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1. 정치 체제로서의 자유주의


 정치적인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치체제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개인의 사상과 행동은 왕이나 정부 등 권력에 의해 억압 / 차별 / 통제받아서는 안 된다. 헌법에 보장된 대표적인 기본권으로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있으며 모든 시민은 참정권을 통해 공동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며 민주주의로 귀결된다.


 이에 대응하는 개념은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이다. 권위주의는 소수의 집단이 독재적 권력을 가지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치체이고 전체주의는 개인의 존재 의미를 국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는 극단적인 체제이다.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도 의외로 권위주의가 꽤 많은 지지를 받는다. 개인의 자유에 의지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우정치로 비난하며 철인(예전엔 성군, 지금은 관료, 전문가나 과학자)의 효율적 통치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박정희의 강력한 리더십을 그리워하며, 그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를 여전히 나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불렀다고 예의 운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지도자의 역할을 과장하고 모든 책임을 국가에 지우는 사람들 역시 권위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한다. 철인은 없으며 소수의 집단에 의한 지배는 반드시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의 민주적 절차를 통한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모든 개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근간이다 (내가 마음 놓고 헛소리를 끄적이는 것도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2.  경제 체제로서의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개인의 기본권 중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중시하는 체제이다. 이기적 개인이 생산, 소비, 교환에 자유롭게 참여할 때 최적의 효율이 달성된다고 믿으며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의미한다. 국방, 치안, 교육, 공공시설 건설 등 몇가지 영역을 제외하고는 시장이 생산과 분배의 역할을 감당하게 허용한다.


 하지만 자유방임주의의 시장에 대한 믿음엔 금세 위기가 찾아온다.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독과점은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대공황 등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장기불황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외부효과의 존재로 교육, 의료 등은 과소소비되고 주류, 마약류 등은 과대소비된다. 간섭 없는 시장체제 하에서 불평등과 환경오염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장에서 오랜 시간 근로하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자본주의는 그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여기서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정자본주의, 혹은 진보적(사회적) 자유주의가 등장한다. 생산과 분배에서 기본적으로 시장의 질서를 따르되 시장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체제이다. 독점으로 인한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공정거래법으로 교정하고 세금, 보조금, 규제 등으로 외부효과를 내부화한다. 노동법과 조세제도, 복지제도 등을 통해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구조적인 빈부격차를 해소한다. 흔히 "리버럴"이라 불리는 이런 종류의 자유주의는 미국이나 우리나라 등 우파 비중이 높은 곳에서는 진보, 유럽 등 좌파 비중이 높은 곳에서는 보수로 분된다.


 자유방임과 진보적 자유주의를 포함,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한 경제체제로서의 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체제가 바로 사회주의/공산주의다. 사회주의는 재산권을 국가(정부)가 이양받아 생산 활동을 주도하며 공산주의는 이에 더해 분배까지 정부가 담당다.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사회주의가 그 자체로 생산성이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근로의욕 문제를 제기하지만 국가주도의 다양한 유인체계 고안이 가능하며 실제 소련 같은 경우 2차 대전 후 약 20년 간 세계에서 두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며 분배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하기도 했다.

 

 문제는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전체주의와 결합할 때이다. 균형과 견제가 없는 일인/일당 독재 하에서 지속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소련 역시 70년대 이후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거듭된 정책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한의 실패 역시 경제체제의 실패라기보다 정치체제의 실패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요약하면, 경제체제로서의 자유주의에는 1)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 2) 자유를 증진시키는 개입은 허용하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있으며 그 대척점에는 국가권력이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있다.




3.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


  나는 모든 선거는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생각한다. 정당의 근간은 체제에 대한 신념이며 정치인은 소속 정당의 이념을 현실에 구현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내 이상과 가장 가까운 체제를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에 투표해왔다. 최선이냐 차선이냐 차악이냐는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일단 사람에겐 애초에 별 기대가 없다. 균형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에 크게 어긋나지만 않으면 된다.


 굳이 밝히자면 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보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더 가깝다. 그리고 내 생각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체제를 가장 가깝게 구현해내고 있는 정당은 민주당이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정치적 자유주의의 발전을 이끈 정당이며 경제적으로도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공산주의를 지향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혼동한 게 아닌가 싶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제시한 개헌을 아직도 사회주의 개헌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 헌법 제9장(119-127조)을 다시 읽어보시면 좋겠다. 우리 헌법은 이미 자유의 증진을 위한 국가의 개입을 상당 부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오해는 공산주의를 전체주의와 혼동하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을 떠올리며 종교탄압과 표현의 자유 말살, 일당 독재 등을 많이 얘기하는데, 이는 경제체제로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정치체제로서 전체주의와 국가의 폭력적 간섭을 비판하는 것이다. 전체주의는 공산주의/사회주의와 느슨한 연관이 있을 뿐 같은 개념은 아니다.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면서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중부담 중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고도 사회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그 합의과정이 투명하며 정부와 시민 간 신뢰가 높은 (정치적) 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꼭 전체주의와 결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체주의적인 정당은 선거 때마다 이름을 바꾸는 수구정당들이다. 사상이 다르면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고, 과거 전력에서 전향했는지 밝히라고 윽박지르고, 행정부가 앞장서서 공당을 해산시키고, 권력을 남용하여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비극을 덮으려 언론을 통제하는 등등 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이 가까운 과거에 한 일이다. 누가 자유주의의 적인지 나한테는 비교적 명확하다.


 물론 이 글의 견해는 내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다. 우파적 견제도 필요하고 좌파적 견제도 필요하다. 각자 선호와 취향에 따라 좋은 선택을 하시면 좋겠다.


----


덧. 투표는 못하지만 누구를 뽑을지 생각은 해놓음. 지역구는 큰 고민이 없는데 비례가 문제 - 민주당이 선택지에 없음. 우리나라 집권당엔 좌파적 견제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사회주의 계열 정당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음.


매거진의 이전글 멋진신세계-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