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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May 06. 2020

“실패”한 유럽의 교훈

서구의 락다운 논쟁과 생활방역

“실패”한 유럽의 교훈

- 락다운 논쟁과 생활방역


한국의 전염병 대응에 대한 상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미 “선진국”들에서 연일 암울한 죽음의 소식이 들려오는 이때에 한국은 감염 확산 저지와 감염자 치료 모두에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대만, 몽골, 베트남 등 한국보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훨씬 적은 아시아 국가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한국은 국경을 닫지 않아 방역의 비용을 최소화했다는 점, 초기 확진자 급증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여 단기간에 “커브 완만하게 하기”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서구의 모범이 되기에 더 적절하다. 


지난 며칠간은 확진자 수 열명 미만에 그마저 대부분 해외유입으로 지역사회 확산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걱정거리였던 상춘객들의 일탈이나 부활절 종교모임도, 긴장 가운데 치러진 총선도 2차 파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생활 방역”으로 전환된다. 조심스럽게나마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손꼽는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성과이다. 


 한국이 정부와 전문가 집단, 일반시민들의 공조 아래 우리만의 방식으로 전염병 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방식”을 세계 표준으로 내세우거나 다른 나라의 상이한 정책을 열등하게 평가하는 것은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각국의 특수한 맥락을 이해한 후에야 방역의 목표와 대응의 강도, 더 나아가 방역 성과에서 왜 차이가 나는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특정 국가의 정책을 성급하게 악마화하는 것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상황은 종식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중간 평가일 뿐,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과도한 성취감과 우월감을 걷어내면 “K-방역”의 장단점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보완할 수 있다. 우리 기준에 “실패”한 나라의 경험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 하나가 락다운을 둘러싼 논쟁이다. 




 우리는 살짝 비켜나 있지만, 유럽 등지에서는 락다운(강제 이동제한) 논쟁이 한창이다. 휴교와 국경 봉쇄는 물론 상점과 식당을 모두 닫고 “Stay at Home”을 법으로 강제한다. 유럽에선 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시행했고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 덴마크, 영국 등이 합류했다. 전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짧게는 2주, 길면 두달 이상 집에서 격리 중이다.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락다운의 실제 효과는 미지수이다. 아래 그래프와 표를 보면 락다운 시행 시기와 사망자 감소 시기에 큰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노르웨이처럼 확산 초기에 락다운을 시행하여 효과를 본 나라도 있는 반면 벨기에처럼 효과를 못 본 경우도 있다. 가장 먼저 락다운을 시행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는 락다운 이후에도 계속 사망자 수가 증가했고 8주가량 지난 지금까지 하루 이백명 이상 사망했다. 반면 독일은 확진자 100명이 나온 후 22일이 지나서야 이동제한 조치를 시행했음에도 사망자 수가 비교적 적다. 락다운을 전혀 시행하지 않은 스웨덴의 경우 백만명 당 사망자 수가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고 상승추세도 다른 나라에 비해 가파르지 않다. 


 


 모든 시민이 집에만 있으면 이론적으로 감염 확산이 원천 차단되겠지만, 현실에선 정책에 대한 낮은 호응과 정서적, 경제적 비용으로 인한 지속 불가능성의 이유로 기대한 만큼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각국의 감염 확산 단계에 따라 락다운 정책의 성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지속가능성이 관건이다. 강제 봉쇄정책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가늠할 수 없다. 관광, 자영업, 요식업,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모두 영향을 받는다. 휴교로 돌봄 공백이 생기면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의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다. 일용직 노동자와 극빈곤층은 생계의 위협에 내몰린다. 백신 개발이 언제 가능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감염 확산을 무조건 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소위 “집단면역”으로 잘못 불리는 완화(mitigation) 정책이다.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실제 집단면역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나라는 없다. 주로 비난의 타깃이 된 영국과 스웨덴 방역당국은 집단면역을 정책목표로 삼은 적이 전혀 없다고 여러 차례 부인했다. 치사율이 0.1%만 돼도 걸릴 사람은 걸리라고 내버려 두는 류의 “집단면역 정책”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영국, 네덜란드에서 초기 추진하다 포기했으며 스웨덴이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느슨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완화 정책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미국도 주에 따라 완화 정책을 채택한 곳이 많다. 


 완화 정책은 전염병이 이미 통제 불가능한 정도로 퍼졌을 경우 완전 통제(containment)를 포기하는 대신 중증 및 고위험군 환자에 의료역량을 집중시켜 사망자 발생을 최소화하는 접근이다. 기저질환이 없는 젊은 사람에게 코로나19 치명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는 사실이 의료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완화 정책은 궁극적으로 인구의 상당수가 감염 후 항체를 갖게 해 집단면역으로 이어진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싸워 이긴 후 사회 전체를 지키는 그림이다. 무책임한 방임과는 거리가 있다. 이미 감염 확산이 진행된 단계에서는 락다운 정책 역시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집단면역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완화 정책을 집단면역 정책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통제 정책의 지속 불가능성과 높은 비용으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완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완화 정책이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1) 의료 체계를 뛰어넘는 환자수 급증을 막기 위한 개인위생수칙 준수와 2) 고위험군, 취약계층의 적극적 보호가 필수이다. 완화 정책을 이미 시행 중인 여러 국가가 여전히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2)에서 공통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집단감염이 발발한 곳은 주로 요양병원과 이민자 집단, 밀집된 작업 환경의 공장 등이다. 요양병원 직원들과 의료진들에게 보호장비가 지급되지 않아 감염 확산을 저지하지 못했으며 높은 사망률로 이어졌다. 이민자들과 저소득층 역시 감염 예방수칙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질병에 노출됐다. 의료, 서비스업 등 위험 직군에 포진해 있는 이민자 집단과, 기존 의료 혜택에서 소외되어 기저질환을 갖고 있던 저소득층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완화 정책은 반드시 취약계층 보호를 수반해야 하는데 영국, 스웨덴, 미국 등은 이 부분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인구 대비 감염자와 사망자 수로 볼 때 서구의 경험은 우리나라에 아무런 교훈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현재, 철저한 봉쇄와 완화 정책 사이의 논쟁을 통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어느 지점에서 방역과 일상의 균형을 찾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생활방역으로의 전환은 감염의 확산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상태에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노력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고 정서적, 경제적 비용이 극심한 상황에서 확진자 수 0을 목표로 통제를 지속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또한 백신과 치료제가 없고,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감염 확산이 계속되기 때문에 국경을 걸어 잠그지 않는 한 유행이 종식됐다고 섣불리 선언하기도 어렵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지역사회 감염 확산이 다시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확진자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이미 조용한 전파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재택근무 종료로 출퇴근길 대중교통이 붐비고 개학으로 학생들이 교실에 돌아오면 집단감염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면 두달이고 세달이고 예전처럼 모든 활동을 멈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고 취약층은 이미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국가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완화 정책을 채택하여 방역과 일상의 균형을 추구하는 몇몇 국가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정책의 비용과 효과를 비교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감염 확산의 위험을 감수하는 타협이 필요하다.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철저한 위생수칙 준수로 감염 확률을 낮추는 한편 감염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대비 없는 용기는 만용에 불과하다. 많은 서구 국가에서 실패했지만, 완화 정책으로의 전환은 반드시 고위험군 보호를 수반해야 한다. 어떤 직군이 감염에 가장 취약한지, 감염 확산에 가장 불리한 환경이 어디인지, 감염됐을 때 사망에 이를 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선별하여 의료 및 경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의료자원 배분 없이 펴는 완화 정책이야 말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강제 봉쇄 없이도 감염 확산 저지와 사망률 최소화에 성공한 우리나라 방역의 성과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 무조건적인 절제와 격리는 장기전에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되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를 준비하되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서구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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