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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26. 2019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


 내가 동경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번째는 인문학에 능통한 사람이다. 


  역사, 철학,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나오는 깊이가 부럽다. 그들은 단어 하나도 정의에 어긋나게 사용하지 않고, 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문장을 구성한다. 그러면서도 단어들의 가장 아름다운 조합을 찾아낸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행동과 생활양식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분석하고 글로 표현한다. 


  반면 나는 주로 단순화된 가정에 기초한 이론을 만들어 통계 등의 방법으로 검증하는 트레이닝을 받아 왔다. 이런 방법론은 사회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이 되지만, 놓치는 게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자 경제사로 전공을 바꿔 박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따라갈 수 없는 역사 전공자들의 독서량과 사고의 깊이를 한번 더 확인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박사논문 쓸 때 과제 중 하나가 민족다양성과 분쟁을 측정하는 지표들을 수집해 둘 간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경제학 전공인 첫번째 지도교수의 조언은 주로 데이터 분석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만 들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익숙한 일이었다. 


  문제는 역사학 전공인 두번째 지도교수였다. 일단 "민족"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막혔다. "상상의 공동체" 류의 사회학 이론부터 시작해서 각 민족이 생성/해체되는 역사를 다 훑어본 후에야 제대로 된 인과관계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경제학 트레이닝에 익숙해진 나에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과제였다 (영어도 안되고). 조금 하는 척하다가 "주. 더 깊은 논의는 다음의 책을 살펴보시오"라고 참고문헌을 죽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미처 끝마치지 못한 과제 때문인지 인문학에는 늘 미련이 남는다. 인문학 전공자들의 눈에는 내 글이 어떻게 비칠지 항상 생각하게 된다.



  두번째 부류는 엔지니어다. 


  내가 인간과 사회를 좀 더 이해해 보겠다고 깝죽거리고 (주. 깝치다의 표준어) 있지만 실제 이걸로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반면 엔지니어들은 눈에 보이게 세상을 바꾸는 일들을 하고 있다. 새로운 물건을 디자인하고 개발해내어 사람의 삶을 더 윤택하게, 더 편안하게, 더 생산적으로 바꿔준다.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켜지게 하는 즉각적인 변화는 내가 하는 일과 거리가 있다. 


  아버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나에게 공대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오랜 동안 기업에서 경영자의 위치에 계셨던 아버지는, 기업에, 그리고 세상에 가장 필요한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다. 엔지니어다. 돈도 의미도 이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 


  딱히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공대에 가기엔 내가 수학을 너무 싫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학과에 와서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지만, 공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수학에 매달릴 자신은 없었다. 아내도 이과 성향은 아니어서 아마 우리 아이가 공대에 갈 가능성도 크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어느 분야에 있든 그 분야 안에서 잘 하는게 더 중요할 것이다. 사회과학자 중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복잡한 논의를 영리하게 이론에 녹여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실용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쓴 글은 자기 분야에서도 성과를 못 내면서 남이 하는 일은 더 크게 보는 지질한 (주. 찌질한의 표준어) 넋두리였을지도 모른다.



 덧. 조금 결이 다른 얘기지만 내게 없어서 안타까운 능력도 하나 있다. 유머감각 (a.k.a. 드립력)이다. 브런치, 페북엔 위트 넘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 많다. 아무리 재미없는 주제도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그 능력은 진짜 갖고 싶다. 나도 가끔씩 사람들을 웃기기는 하는데, 한번 웃기고 나면 5년 정도는 기다려야 돼서 그렇게 쓸만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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