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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l 18. 2020

박원순 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소고

내가 피해자 편에서 글을 쓰는 이유

민감한 사안에 대해 실명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건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가 아무말이나 쓰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어떤 이슈에 대해 발언할지, 어느 편에 설지 꽤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다. 내 발언에 따르는 책임이 무엇인지도 심각하게 고려한다.


 이번 박원순 시장 성추행 고소 건에 대해 나는 일찌감치 피해자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아예 말을 아끼거나, 애도와 피해자 보호를 동시에 하거나, 판단을 유보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문제는 내가 선명한 발언을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고, 나의 의사 표명에 위로받을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며, 우리 사회의 구조 변화를 위해 내 참여가 필요하다는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편에 서기로 결정하는 데엔 위험이 따른다. 내 주변에 박원순 시장을 존경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밖에 없는 점은 오히려 작은 일이었다. 내가 속한 진영에서 성 관련 비위는 무관용이 원칙이므로 의사 표명을 위해 진영을 떠날 필요도 없었다.


 내 가장 큰 고민은, 직업병일 수도 있지만, 내가 틀릴 가능성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이 사실이 아니며 상대 진영의 '음모'에 의해 날조된 공격이었다면 '고소인'이 '피해자'라는 명제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고소인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박원순 시장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피해자 편에 서기로 결정한 이유는 내가 성폭력에 대해 가진 '이중잣대'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만큼은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묵살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1) 실제로 성범죄가 흔하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2018년 통계만으로 봐도 강간, 강제추행, 몰카 등 성범죄가 입건 기준 32,104건으로 살인 (849건), 강도(841건)에 비해 40배가량 더 많다. 이중 강제추행이 15,627건으로 성범죄의 절반을 차지한다(출처 링크). 공식적으로 집계된 발생 건수만 이 정도다. 성범죄 특성상 신고 자체가 안 됐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빈도는 더 올라간다.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 성희롱과 성차별은 셀 수조차 없을 것이다.


 아울러 여성들의 경험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성범죄가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다.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 꼴인 18.5%가 살면서 한번 이상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한다(끔찍하다). 성희롱과 음란 전화 등을 합하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연구], p.136


자연스럽게 여성은 남성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 속에 일상을 살아간다. 열 명 중 일곱 명의 여성이 밤에 거리를 걸으며 성폭력을 걱정한다. 열명 중 여섯 명은 택시나 공중화장실을 마음 편히 이용하지 못한다.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온라인 이용도, 심지어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연구], p.122


 이쯤 되면 성범죄는 여성들이 겪는 일상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럴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성폭력이 자행된다.


 여기에 업무상 위력이 더해지면 어떨까. 불안정한 노동환경은 성범죄를 포함한 각종 비위 행위에 저항을 어렵게 한다. 개인비서 등에 부여되는 성차별적 업무와 여성의 대상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 여기에 권력관계가 더해지면 성폭력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2) 무고의 가능성이 낮다.


 성범죄는 그 특성상 피해자 측에서 입증하기가 어렵고, 입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성범죄 피해자가 재판정에 서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끔찍한 기억을 시작부터 복기하며 타인에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꽃뱀'이 아니냐며 의심부터 시작한다. 피해 이후 친구와 수다를 떨었거나 가해자에게 웃음을 보였다며 '피해자다움'의 결여를 추궁받는다. 직장 상사에 대한 문제제기는 업무 상, 고용 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성범죄 관련 법적 절차의 비용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면 무고의 가능성이 낮다고 추론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2017-18년 성범죄 사건 처리 전체 인원이 80,677명이었던 데 반해 고발자가 무고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341명에 그쳤다(출처 링크). 중복을 제외하더라도 무고죄의 비율은 전체 사건의 1%가 채 안된다. 다른 형사범죄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폭력 무고 고소’라는 2차 가해]




 성범죄 기소 비율이 낮다거나(3-40%) 무죄 판결 혹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의 비율(20%)이 높다는 이유로 무고가 생각보다 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성범죄가 여타 범죄보다 입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의견이다.



3)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하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이다. 적은 비율이지만 무고는 존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례도 분명히 존재한다. 고 박원순 시장에게 아무런 죄가 없었을 가능성도 배제하면 안 된다.  


 문제는 힘의 불균형이다. 성범죄는 권력관계의 상위에 있는 사람이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범하는 경우가 많다. 즉,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려는 움직임이 권력관계 하에서 묵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 박원순 시장 고소건만 해도 그렇다. 애도와 추모의 물결에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성대한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고인에 대한 예의, 고인의 업적, 유족의 슬픔 등 다양한 이유로 진상규명이 미뤄졌다. 정의당 의원을 비록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어리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꼴페미라느니 하는 모욕을 당했다. 피해자의 신상뿐 아니라 고소를 대리한 변호사의 신상까지 까발려져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소수자는 자기주장의 신빙성을 증명하는 것에 더해 그 형식까지도 다수가 승인하는 형태를 뗘야 한다. 고소인이 직접 나와서 말하라느니, 무조건 기자회견에서 증거를 공개하라느니, 기자회견을 나눠서 하지 말고 한 번에 하라느니, 아니면 못 믿겠다느니 요구가 많다. 겉으로 피해자의 입장에 서겠다는 서울시 관계자들은 뒤에서 피해자를 협박하고 회유한다.

 

 이게 대등한 싸움인가? 피해자는 가해지목인의 죽음으로 이미 법적인 절차로 진상을 가릴 기회를 잃었다. 적법하게 명예를 회복하고 가해자를 용서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피해자의 선택권이 극히 제한된 이 상황에, 유죄의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폭력인가.


 피해자 말이 다 사실이라는 것이 아니다. 제발 이 피해자의 목소리라도 들어보자는 것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처가 가장 적은 방식으로, 권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보호하고 지원해 주자는 것이다.


 나는 박원순 시장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성추행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지만,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피해자 편에 서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빅데이터에 실시간으로 여론이 반영되는 지금, 온라인 상에서 의견을 밝히는 것은 마치 광장에 서서 구호를 외치는 것과 같다. 나 한 사람 시위대에 합류한다고 얼마나 영향력이 있겠냐만, 그렇게 촛불이 모이고 권력이 굴복한 사례들을 생각하면 나라는 개인의 참여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를 드러내는 것은 꽤나 두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의 심기를 거슬러야 하고 틀렸을 경우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성폭력으로 인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거대한 권력에 맞설 때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엄과 앞으로 생길 피해자들을 지키기 위해 낸 용기를 생각하면, 나의 작은 용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나는, 피해자에 연대하며 신속한 진상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관계자들의 2차 가해 중단을 요구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성차별적 근무환경의 개선을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구조 안에 들어와 있는 나 스스로의 변화를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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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 글은 저의 주관적인 판단과 결론을 적은 글입니다. 각자 자기 정의대로 행동하시는 분들을 모두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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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대검찰청 범죄분석 http://www.spo.go.kr/site/spo/crimeAnalysis.do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연구] https://www.kwdi.re.kr/publications/reportView.do?p=6&idx=125804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폭력무고 고소’라는 2차 가해] https://www.kwdi.re.kr/publications/issuePaperView.do?p=1&idx=12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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