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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ug 05. 2020

이유 없이 국민을 죽이는 나라는 없다

스웨덴 '집단면역' 전략의 오해와 진실

(표지그림 출처: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country/sweden/)



1. 복지천국에서 노인들의 무덤으로 - 스웨덴의 '집단면역 전략'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꿈의 복지국가'였던 스웨덴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 유행 초기부터 스웨덴의 대응은 심상치 않았다. 유럽의 주변국이 다 문을 걸어 잠그고 강력한 봉쇄(lockdown) 정책을 시행하는 중에도 스웨덴은 꿋꿋이 버텼다. 자유의 수호국을 자처하며 봉쇄를 거부하던 영국과 네덜란드가 급증하는 감염자와 사망자 수에 결국 백기를 들었을 때도 스웨덴은 어찌 된 일인지 느슨한 대응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강력한 전염성을 지닌 이 미지의 바이러스는 북유럽의 지상낙원을 마음껏 휩쓸고 다녔다. 8월 3일 현재 스웨덴의 확진자는 8만 1천여 명이고, 5천70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스웨덴 인구가 천만명 조금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피해 정도는 훨씬 크게 다가온다. 스웨덴의 인구 십만 명 당 사망자수는 57명으로 벨기에, 영국, 스페인, 페루, 이탈리아 다음으로 세계 6위이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미국, 브라질, 인도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응은 종종 '집단면역'으로 불린다. 집단면역 전략은 사람들 사이에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게 내버려 두어 인구 일정 수준 이상이 면역을 갖추게 하는 식의 대응이다. 봉쇄 없이 상점, 레스토랑, 실내외 체육시설을 다 열어놓았고, 중학생보다 어린 학생들은 학교도 그대로 나가게 내버려 두어서 방역당국이 집단면역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일각에선 노인 인구의 사망을 방치하는 '코로나 고려장'이라며 스웨덴 방역당국을 비난했다. 실제 치명률이 0.1%만 돼도 걸릴 사람은 걸리라고 내버려 두는 류의 집단면역 전략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국내 언론이 스웨덴을 소식을 전할 때 집단면역이란 문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스웨덴의 사정을 깊이 모른 채 일국의 정책을 단순화 혹은 악마화하는 잘못된 시도이다. 스웨덴의 수상, 국무장관, 보건장관, 방역당국 수장까지 나서서 자신들은 집단면역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부인했다. 실제로 스웨덴은 유행 초기부터 위험지역 여행 제한을 권고하고 순차적으로 고위험군 다중시설 이용 제한, 16세 이상 교육기관 온라인 수업 전환, 50인 이상 모임 금지, 요양시설 면회 금지, 재택근무 권고 등 다양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해왔다. 정부의 발표자료에는 각 장소 별, 활동 별, 연령 별 세부 위생 수칙이 꼼꼼히 적혀있었다.  


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응과 경제적 영향], p.6





2. 스웨덴의 사정 - 느슨한 대응으로 보이는 이유


 스웨덴이 시종일관 느슨한 정책을 펴는 것으로 보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강제성을 띠는 정책을 최소화했다. 각종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중 법의 구속을 받는 항목은 50인 이상 모임 금지, 요양시설 면회 금지 등 손에 꼽는다. 나머지는 권고 혹은 자제에 불과하다. 이는 시민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스웨덴의 문화가 배경이 된다. 의료체계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 감염 확산을 저지하는 것이 필수이지만 시민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을 경우 국가의 개입 없이도 통제가 가능하다.


 둘째로 제한된 가용 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했다. 오랜 기간 복지국가를 운영하면서 불필요한 과잉진료가 없어졌다. 스웨덴의 인구 천명당 병상 수는 2.2개로 OECD 평균인 4.7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며 한국(12.4개)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저위험군 감염자나 경증환자에게 전용할 자원이 없는 상황에선 중증환자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스웨덴이 일찌감치 통제(containment) 전략을 포기하고  완화(mitigation) 전략으로 돌아선 이유이다.


 셋째로 방역과 일상의 조화를 추구했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직면한 유일한 문제가 아니다. 더 치명적인 질병도 많고 각자 유지해야 하는 생계와 일자리도 중요하다. 생명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아니라 경제의 문제 역시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문제라는 이다. 식당과 카페를 닫을 경우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휴교를 할 경우 학부모들의 고통이 심화된다. 특히 휴교의 경우 의료, 치안, 에너지 공급, 운송 등 필수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이 보육에 매이게 되므로 효과보다 비용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넷째로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폈다.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종식되기 어렵다는 과학적 근거 위에 정책의 강도와 시행시기를 조율했다. 여러 부작용을 고려했을 때 봉쇄를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미 몇몇 나라에서 그렇듯 봉쇄 해제 후 감염자가 급증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정책을 펴는 것은 필수적이다. 실제 스웨덴은 지난 4월 의회 동의 없이 신속히 정책을 변경하기 위해 법을 개정해놓았으나, 시기 상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봉쇄를 단행하지 않았다.

 


 스웨덴이 이런 바탕 위에 편 일련의 정책은 시민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방역당국에 대한 신뢰도는 줄곧 과반을 상회했고 한때 70%를 넘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했다. 구글모빌리티 데이터에 따르면 스웨덴의 소매점 및 여가시설 이용인구는 25% 감소, 대중교통 이용은 40% 감소, 직장 출근자 비율은 27% 감소했다(즉, 재택근무 증가). 이는 봉쇄를 시행한 주변국 인구이동에 비해 높은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봉쇄가 해제된 이후 다른 나라에서 인구이동이 예전 수준으로 금세 돌아온 반면 스웨덴은 꾸준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발적인 거리두기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글모빌리티로 본 사회적 거리두기 효과 (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응과 경제적 영향], p. 8)







 3. 의도하지 않은 결과 - 너무 많이 죽었다


 물론 좋은 의도는 좋지 않은 결과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정확한 평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야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스웨덴은 사망자 수가 너무 많다. 주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초기 강력한 대응으로 사망자 수를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교가 된다.


 그리고 문제는 스웨덴의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대부분이 고령자, 요양시설 환자 가운데서 나왔다는 점이다. 사망자의 90%가 70세 이상 고령인구에서 발생하였고 그중 절반 이상이 요양시설에서 발생하였다. 요양시설 면회 금지 조치가 늦었고 기본적인 보호장구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고위험군은 우선 검사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검사 역량 미비로 진단 및 치료를 제공하지 못했다. 검사 수를 높이고 요양시설에 대한 자원 투입을 확대한 것은 6월 중순이 지나서였다. 고위험군 보호에 집중하겠다는 정책목표가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스웨덴 정책에 자부심이 있는 방역당국 수장과 국민들도 고위험군 보호만큼은 철저히 실패했다며 자책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초기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위생수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 더 강력한 통제가 있었어야 했다는 만시지탄도 들린다.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중보건청장은 지난 6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만약 비슷한 사태가 또 발생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 덧붙였다.  


 느슨한 대응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도 불분명하다. 지난 1/4분기 기준 스웨덴의 (전기대비) 성장률은 0.1%로 주요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가계소비와 설비투자 감소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은 등 긍정적인 결과도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자체가 경제에 미친 영향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실업률이 급증해서 노동인구에 타격이 있고 수출 비중이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 특성상 타국의 경기 침체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크다. IMF, OECD, EU 등의 전망에 따르면 스웨덴의 2020년 예상 경제성장률은 -5~7%로 유럽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봉쇄 없이 확산을 저지했기 때문에 2차 파동이 올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점이 그나마 희망적인 요소이다.


1분기는 선방, 2분기는 아직 불확실 (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응과 경제적 영향], p.11)


  코로나19의 경제적 영향은 2분기 성적과 향후 회복 상황을 보아야 정확하게 평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분야에서 현재까지 선방했고 봉쇄 없이 커브 납작하기에 성공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초기 고위험군 보호 실패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스웨덴 정책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어쨌든 스웨덴은 커브 납작하게 하기에 성공했다. (출처: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country/sweden)

 




 4. 스웨덴의 교훈? '악마화'도, '이상화'도 없이


 한국과 스웨덴의 전략엔 봉쇄 없는 대응이라는 유사성이 있지만, 초기부터 발빠른 대처로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해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응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대규모 검사, 끈질긴 추적/격리, 적절한 치료 제공으로 방역에 성공했고 그 결과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자유롭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가 스웨덴의 전략을 통해 배울 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완벽한 정책은 없다. 우리가 잘한 점은 무엇이고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개선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를 위해서도, 앞으로 얼마나 자주 올지 모르는 신종 전염병 유행을 대비해서라도 다양한 대응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대응은 여타 국가와 구별점이 분명한 특수한 사례이므로 더 효용가치가 크다.


 우리가 참고할만한 스웨덴 대응의 장점은 1) 지속 가능하여 장기화에 유리하고, 2) 의료자원이 코로나19에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3) 휴교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4) 비용과 효과를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정책을 수립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의료진 피로도가 극도로 높아지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부작용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상황에선 '감염은 만악의 근원'이라며 감염 통제를 최우선에 두기 보단 고위험군 보호와 중증환자 치료에 자원을 배분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이때에도 감염 확산이 고령층, 기저질환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상황 별/장소 별/연령 별 세부 행동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염두에 둘 것은 "이유 없이 국민을 죽이는 나라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그 나라의 특수한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각 나라를 확진자와 사망자 수로 줄세운 후 성과가 초라해 보이는 나라를 무시하고 배척해버리면, 그러면서 우리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만 소비해버리면,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성찰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다양한 시각을 반영한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선 타국 정책에 대한 '악마화'도 '이상화'도 없는 정확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KIEP 세계경제 포커스: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응전략과 경제적 영향]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보고서 링크는:


 http://www.kiep.go.kr/sub/view.do?bbsId=worldEcoFocus&nttId=208608&pageIndex=1&fbclid=IwAR2SymaeZ4YTU12D3cZBVqIDP1EAFkj0E3VdCWyB-pnwkwrP_Ih-Sh1LZ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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