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때문에?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언론기사와 소셜미디어에 "전광훈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받고 자영업자들이 고통받고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는다는 원망이 많이 들린다. 혹자는 정부가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 시대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일차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다루기 까다로운 이 바이러스의 특성이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전광훈 없는 많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절망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고통의 근원은 바이러스다.
우리가 고통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 때문이다. 정부 정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인류는 노인과 병자에게만 치명적인 이 질병에 다 같이 맞서기로 결정했다. 누구의 목숨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모두 일정 부분 고통을 감당하기로 합의한 것이다(나는 안 했는데? 이런 말은 의미 없음. 사회 전체의 합의를 말함).
이를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과장한다. 규칙을 어긴 사람을 비난한다. 생명권을 앞장 세워 사생활 보호와 이동의 자유, 신체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권 등 기본권을 희생한다. 이 질병으로 죽을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도, 즉 생명권의 위협을 받지 않는 사람도 타인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본인의 권리를 포기한다.
좋다 나쁘다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다. 나는 우리가 과도한 공포로 인해 이상적인 대응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인류의 본능이 도달한 이 균형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완전 락다운과 완전 방임의 극단을 오가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는 꽤나 선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재확산의 기로에서, 우리는 노약자의 희생을 감수하고 방치하는 대신 다시 고삐를 죄며 모두가 고통받는 대응을 선택했다.
자영업자들의, 방역 공무원의, 의료진의, 아이들의, 학부모들의 고통은 우리가 이 고약한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선택한 방식에 수반하는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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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유행은 필연적이었다. 우리 정부가 잘못했다, 전광훈이 잘못했다 손가락질하는 데 급급한 사람들은 눈을 들어 세계를 한번 보기 바란다. 1차 유행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많은 나라들에서 감염이 재확산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 필연적으로 방역 강도를 낮추게 되면 그 틈에 필연적으로 재확산이 진행되는, 그런 고약한 질병과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이러스의 통제를 위해 쓸 수 있는 자원(시민의 협조 포함)은 무한하지 않다. 모든 비용을 감수하고 확산을 저지하겠다 마음먹으면 감염 제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면 또 다른 생명의 희생을 맞닥뜨릴 것이다. 비용만 크고 정작 효과는 없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정책의 성공은 어느 정도 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를 탓하거나 개개인의 일탈을 굳이 들춰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건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우리가 그간 달성해 온 균형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1차로 고약한 특성을 지닌 바이러스 때문이고, 2차로 그때 우리가 본능적으로 선택한 대응방식 때문이다.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안에서 정부나 개개인의 행동은 큰 의미가 없다(물론 자기 자신에겐 의미 있다). 전광훈이나 보수 개신교 아니어도 오랜 통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나왔을 것이고 그들을 매개로 하는 감염 확산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의 규칙을 어긴 범죄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렇듯 절차에 맞게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사회문제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해결은 고사하고 부작용만 심화될 뿐이다.
무분별한 정부 비난도 경계해야 한다. 이 위기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미리부터 충분히 통제하지 않아서 감염이 확산되고 약자들이 고통받게 되었다는 주장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된다. 미리부터 충분히 통제했다면 그 대응 그대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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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확산은 필연이니 누구 탓하지 말고 운명으로 받아들이자는 한가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정확히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확산세가 잦아든 요 몇달 간 대규모 아웃브레이크를 얼마나 착실히 대비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봉쇄 강도가 올라갈 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 그에 따르는 재원은 어떻게 충당할지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일상을 포기할 수 없다면 가장 적은 비용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는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하여 상황 별/장소 별/행동 별 방역수칙을 고안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이미 고민하고 있겠지만, 시민으로서 나는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아 화풀이하는 대신 위와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더 적절한 참여 방식이라 생각한다. 내 위치에서 기여할 부분을 찾을 때도 이 원칙을 마음에 새긴다.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정확히 대응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은 그렇다는 얘기다. 다른 분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정하는 건 철저히 그분들 자유다.